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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희망으로 바꾼 '한국의 모세' 채규철 선생
여기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국내 최고의 대학을 마친 뒤 덴마크와 인도로 가서 유학까지 마치고 돌아와 찬란한 희망의 날개를 막 펼치다가 자동차 사고로 하루아침에 날개가 꺾여버린 사람이 있다.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한국의 모세'로 불리는 두밀리자연학교 채규철 교장, 이분이 바로 그 처참한 운명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채규철 교장은 그 모진 고통 앞에서도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다. 교통사고가 나는 1968년부터 1982년까지는 서울 청십자의료협동조합 전무를 맡았으며, 1970년에는 간 질환자진료사업인 '장미회'를 창립했다. 이어 1975년에는 사랑의 장기기증본부를 창립해 지금까지 이사를 맡고 있으며, 1986년에는 두밀리자연학교를 세워 지금까지 교장을 맡고 있다. 게다가 지금 그는 그 바쁜 일과 불편한 몸에도 새마을 연수원 등 수많은 교육현장에서 삶을 주제로 한 강의를 하고 있다. 바로 그런 까닭에 가까운 사람들은 그의 기적을 모세에 비유해 '한국의 모세 채규철'로 부르고 있으며, 아이들은 철없이 'ET할아버지'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죽어도 채규철은 살아야 한다" "60여 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랑곳없이 매일 새벽에 차디찬 교회의 한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나의 아들 철이를 한국의 모세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지난해(2005)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도를 잊을 수 없습니다." - '머리글' 몇 토막 '채규철의 멋,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삶 이야기'라는 덧글이 붙은 <소나기 30분>(도서출판 선)은 두밀리자연학교 채규철(69) 교장의 일그러진 삶의 자화상이자 그 모진 운명을 이겨낸 인간승리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채규철 교장은 머리말에서 "1970년 5월 24일 부산에 있는 아들 진석이의 생일 선물을 사러 갔다가 지병이었던 결핵으로 몇 번의 각혈을 하다 매정하게 떠난 아내 성례의 핸드백 속에 간직되었던 한 장의 유서 '나는 죽어도 채규철은 살아야 한다'고 한 그녀의 마지막 유언을 잊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마치 그 유언 때문에 오늘의 채규철이 살아있는 것처럼. 옛 청십자의료협동조합 대표이사를 지낸 장기려 의학박사는 추천의 글에서 "채규철은 명석한 머리, 지혜의 눈, 정의감에 불타는 심장, 용감하게 실천하는 의사, 어학의 재능 등 사람으로서 교만해질 수 있는 요소들을 풍성하게 지니고 있다"며 "(만약)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에서 어떻게 쓰임 받을지 불문가지라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내게는 외동딸이 하나 있다. 이름은 송화, 채송화. 이름도 예쁘지만 얼굴도 이름 못지않게 예쁘다. 얼굴이 예뻐서인지 몰라도 매일같이 동네 꼬마 총각들이 데이트하러 우리 집에 왔다. 보통 날은 괜찮았다. 내가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늦게 귀가하니까. 그런데 어느 일요일, 내가 집에 있을 때였다. 송화와 동네 꼬마들이 한참 신나게 뛰어 놀고 있다가 우연히 내가 화장실 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를 보자마자 꼬마들은 얼른 신발을 찾아 신고 도망을 쳤다. 그 다음부터 이 꼬마들이 다시는 우리 집에 놀러오지 않았다." - 97쪽,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 몇 토막 왜 아이들이 채규철의 모습을 딱 한번 보고 혼비백산한 뒤 발길조차 딱 끊어버렸을까. 이에 대해 채규철은 "꼬마들의 눈에는 내 모습이 도깨비나 호랑이로 보였나 보다"라며 껄껄 웃는다. "그래도 내 얼굴은 30여 회나 성형수술을 거쳐 만든 걸작품"이며, 600만불 사나이처럼 많은 돈은 들어가지 않았지만 최소한 6000만원은 들어간 얼굴인데 말이다. 사실, 채규철은 성형수술을 할 그때 흉측하게 일그러지고 불에 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얼굴보다 시력 걱정을 더 많이 했다. 그가 1968년부터 1970년까지 2년여의 입원을 마치고 병원을 나섰을 때 하나밖에 남지 않았던 눈의 시력이 1미터 앞을 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다른 것은 다 괜찮은 데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고민스러웠다. 그때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길을 열어주고 삶의 용기를 준 책이 한 권 있었다. 헬렌켈러의 <3일 동안만 볼수 있다면>. 그는 잘 보이지 않는 한쪽 눈으로 그 책을 틈틈이 읽고, 주치의들이 보내온 '마지막 남은 시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수술을 잘해야 한다'라는 편지 내용들을 꼼꼼하게 챙기며, 마침내 길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의 시력을 회복한다. 채규철의 아내 정희는 제자이자 천사 "내 아내 정희는 비즈니스(business) 우먼이 아니고 비지(busy) 우먼이다. 아내의 비즈니스(busyness, 바쁨)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다. 화상으로 손이 갈고리 같이 구부러져서 세수도 못하는 내 모든 뒷바라지를 해야 하고, 의안인 한쪽 눈을 식염수에 소독하여 다시 넣어 주어야 하며, 와이셔츠 단추를 채우지 못하니까 그것도 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전반전 일들이 끝나면 식사하고 우리의 중반전이 시작된다. 아내는 매일 같이 내게 오는 강의 청탁 전화를 받는 일 외에도 잡다한 일 처리를 하는 매니저가 된다. 중반전이 지나면 후반전이 시작된다. 155cm의 작은 체구로 코란도 운전기사가 되어 내가 강의하는 곳까지 운전해서 나를 데려다 주어야 한다. 그 다음엔 종반전," - 123쪽, '내 아내 정희' 몇 토막 흔히 후반전이라고 하면 어떤 일이 마무리되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글쓴이의 집에서는 종반전이 또 남아 있다. 그의 아내 정희는 종반전에서 그를 포장마차까지 안내를 해야 하고, 교회 여신도 일까지 해야 한다. 그리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의 잠자리까지 돌봐 주어야 한다. 그래야 하루 일이 모두 끝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의 아내는 매주 금요일에는 구역예배를 인도하는 일을 해야 하고, 주말이면 가평에 있는 농장에 가서 김을 매주고 물도 주어야 하며 벌레도 잡아야 한다. 그리고 가끔 가까운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오면 음식대접을 위한 일류 조리사까지 되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채규철은 그의 아내 정희를 비즈니스 우먼이 아니라 '비지 우먼'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또 그 때문에 그는 늘 아내에게 감사하며 산다. 지금의 그의 아내 정희는 충남 아산에 있는 작은 학교 '풀무학원'에서 그가 가르친 제자. 그리고 그가 교통사고로 불구가 된 뒤 처녀의 몸으로 스스로 원해서 결혼까지 했으니, 그의 눈에 아내가 천사로 보이지 않겠는가.
"천당 가는 내신 성적을 A, B, C, D로 나누어보면, 천당 내신 성적 A급은 친구나 이웃을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을 바친 사람들이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신장병 환자들에게 자기의 한쪽 콩팥을 기증한 사람들, 앞을 못 보는 맹인들을 위해 자기의 안구를 기증한 사람들… 은 천당 대신 성적 A급이 되고도 남는다." - 175쪽, '천당으로 가는 내신성적' 몇 토막 그렇다면 채규철이 말하는 천당으로 가는 내신성적 B, C, D급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는 "B급은 시간과 기술 그리고 노력을 어려운 노인들과 장애인을 위해서 쓰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봉사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C급은 알뜰하게 모은 돈으로 불우이웃 돕기 단체 같은 곳에 내는 사람들이며, D급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100원짜리 한 닢이라도 베푸는 사람들이다. <소나기 30분>은 죽음의 밭을 희망의 밭으로 일구어낸 살아 꿈틀대는 기록이다. 우리나라에 의료보험제도를 처음 들여와 사회복지사업에 힘을 쏟던 한 젊은이가 졸지에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 50% 3도 화상을 입고, 30여 차례의 수술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불행한 운명과 싸워 이겨낸 이야기. 채규철의 일그러진 얼굴이야말로 우리 시대 진정한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겠는가. 1937년 함남 함흥에서 태어난 두밀리자연학교 채규철 교장은 그동안 수기<저 높은 곳을 향하여>, 수필집<사람은 두번 죽지 않는다>, <사명을 다하기까지는 죽지 않는다>를 펴냈으며, 역서로는 <마틴루터 킹의 사랑의 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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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배꾸마당 밟는 소리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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