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고]이진리 바다를 지켜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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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3 2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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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 비슷한 시기에 공룡과 조개와
빗방울이 자국을 남긴다면 어느 자국이 남을 확률이 높을까? 크기로 보나 숫자로 보나 뻔한 결론이다.
놀랍게도 확률이 훨씬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공룡발자국은 천연기념물에다 공룡공원까지 만들어져 관광객을 끌어 들이고 있고, 빗방울 자국(우흔)이 남은 조그만 바위 조차도 그
희귀성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다. 그런데 공룡발자국보다 훨씬 더 희귀하고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조개 발자국이 울산에서 발견됐는데도
보존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조개발자국이 발견된 곳은 울산시 울주군 이진리다. 이곳은 온산병의 근원지로서 인간이 공해를 막는
것이 아니라 공해가 인간을 몰아낸 지역이다. 지금은 울산의 신항만 공사가 진행 중이고 인근 산들은 깎아서 공장 부지로 편입될 예정이다. 이 곳의
희귀성과 지질, 지형학적인 가치 때문에 천연기념물 지정을 의뢰했으나 부결됐다. 환경영향평가에서 보존가치가 있다는 학계의 연구는 전문가의 부재로
무시되고 말았다.
이진리 해안은 여러모로 보존해야 할 가치가 크다. 우선 차일암은 울산바위의 기저석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규모의
암반이 드러나 있는 곳이다. 지형 형성사적으로 말하면 오랜 세월 파도의 힘에 의해 깎여서 만들어진 파식대가 융기해서 만들어진 지형이다. 차일암은
해수에 의한 화강암의 다양한 풍화현상을 관찰할 수 자연학습장이다. 포트홀, 나마, 판상절리, 주상절리, 새프롤라이트, 토오르등 자연지리 책에서나
겨우 볼 수 있는 사진들을 여기서는 그대로 볼 수 있다. 물이 빠지는 때는 해수면에 의해 만들어진 수직절벽도 볼 수 있는데 절벽에는 천전리
각석과 유사한 기하학적인 문양도 새겨져 있다. 그 문양은 석영 알갱이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자연스런 유두 모양이다. 차일암 위의 의연한 기상을
나타내는 해송들은 오랜 세월 바랏바람을 맞으면서 한쪽으로만 자라서 만들어진 편형수의 예로 적합하다.
크고 작은 두개의 바위로
구성된 범바위도 보존가치가 높다. 범월갑이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했다.
모양이 바다를 향해 수굿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순한
호랑이상이다. 여기서 유일하고도 귀한 것은 조개 발자국에 의한 타포니이다. 돌마다 조개가 파고 들어가서 살았던 흔적인 구멍을 가지고 있으며
바위에는 이것으로부터 유래한 커다란 구멍들이 진기한 모양으로 뚫려 있다. 제주도 외에 구멍뚫린 이런 진기한 돌들은 본 적이 있는가. 조개가 이런
구멍을 파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을 거쳐야 할까. 바다 속에 있어야 할 조개집이 되었던 바위와 돌들이 바닷가에 흩어져 있는 것은 융기의 산 증거가
아닌가.
이진리 해안의 뒷산은 화강암산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다. 두부 쌓아 놓은 듯이 차곡차곡 재어져 있는 돌산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구의 역사를 가늠하게 한다. 산쪽에는 바다쪽과는 또 다른 화강암의 다양한 풍화현상을 보여준다. 남근석은 가장 대표적인 예로서
설악산의 흔들바위와 같은 토오르이다.
이 지역이 보존돼야 하는 또다른 이유는 울산에 몇 군데 남지 않은 자연해안이라는 점이다.
상전벽해라고 할 만큼 조용한 어촌에서 세계적인 공단지대로 변모해버린 온산공단. 신항만으로 개발되어 많은 배들이 드나들게 될 미래의 해안 경관을
생각해 보자.
온산의 공장지붕 들 위로 그래도 시선을 둘 수 있는 곳은 섬이 되어 버린 이진리의 뒷산 뿐이다. 자연 그대로 있는
울산지역 해안들은 모두 휴양관광지로 손색이 없다. 진하에서 간절곶까지, 울기등대 일부분, 주전과 정자 해변들이 그 곳들이다.
이진리를 자연사박물관으로 만든다면 근처에 있는 간절곶, 진하해수욕장, 서생포왜성, 외고산옹기마을까지 연계된 휴양관광자원이 될
것이다. 거기에 온산의 개발역사전시관도 함께 만들면 볼거리도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선 해야할 일이 지금 남아 있는 해안선을 자연 상태로
보존하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