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흘러나오는 땅 속의 물길, 검룡소 | ||||||||||||||||||||||||
[오마이뉴스 곽교신 기자] 나무는
땅 위로 뻗어 올린 줄기의 부피와 같은 양의 뿌리를 땅 속으로 뻗어 둔다. 양분을 넉넉히 흡수하기 위해서지만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를 거센
바람에도 몸체를 지키기 위한 방편이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도 그러한가. 장장 천이백팔십 리 한강 물길이 시작되는 첫 샘 '검룡소'는 겨레의 장강(長江) 한강의 물길 길이만큼 땅 속으로도 물 뿌리가 뻗어 있는 듯하다. 강원도 태백시 검룡소 못 주위에 다가가면 강한 자장에 걸린 듯 신령스런 기운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검룡소 주위의 그 유난한 기운을 '검룡소의 기(氣)'라고 부르고 그 기운의 신령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혼을 넘나드는 춤을 추는 한 유명 무용가는 확연히 느껴지는 이 기운을 자신의 춤에 빌리고자 검룡소 아래 동네에 춤 전수관을 세우고 싶어했었다.
고대 백제로부터 대한민국까지 한강을 지배한 권력은 곧 한반도의 지배 권력이기도 했다. 이는 검룡소에 넘치는 기와 엄청난 용출량이 보여 주는 생명력이 상징 이상의 현실이었음을 증명하는 것 아닐까.
원(願)인가 한(恨)인가, 삼킴인가 뱉어냄인가. 땅 속에서 솟아오르는 물의 힘으로 못 수면에 잔잔히 그려지는 잔 동그라미 외엔 그런 기운이 물의 모습을 빌어 땅 속에서 솟아 오르는 곳이라고는 느껴지지 않게 고요하다. 못 앞에 웅크리고 앉아 한참을 보니, 그 물 기운은 원(願)으로 보면 원으로도 보이고 한(恨)으로 보면 한으로도 보인다. 삼키는 것으로 보면 삼킴으로 보이고 뱉어내는 것으로 보면 뱉어냄으로도 보인다.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을 보고서야 세상의 온갖 색이 투명한 햇빛 속에 들어 있었음을 깨닫듯이, 작은 폭포로 못 바로 앞에서 고고성(呱呱聲)을 지르며 거대한 장강 한강을 시작하는 검룡소의 조용한 외침을 들으면서 비로소 검룡소 물구멍의 거대한 기를 느끼고는 소스라친다. 무슨 힘이 거대한 양의 물을 땅 속 구멍으로부터 끊임없이 밀어올리는가. 한강가에 살지 않아도 이 땅 사람이면 한강의 기운을 받고 살아 '민족의 젖줄'이란 이름이 새삼 경외로운 이 한강물의 발원은 이 시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어느 강 발원지 샘보다 힘차고 분명하고 거센 검룡소의 이 힘찬 기운을 우린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민족의 젖줄 한강의 기운 검룡소 물이 처음으로 내(川)다운 내의 모습을 이루는 하장천을 시작으로 강원도 정선군 여량의 아우라지 첫 합수 머리에서 송천(松川)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한강은 큰 지천만 십여 개를 합한다. 송천은 오대산의 유명한 '우통수'에서 발원한 물이다. 정확한 측량이 힘들었던 옛 지리서 저자들은 오랫동안 우통수를 한강의 발원샘으로 꼽기도 했다. 우통수는 궁중의 탕약 용수로 쓰일 만큼 출중한 물이기도 했다. 어린 단종의 사모(思慕)가 젖은 영월 땅 서강 물을 받는 등 십여 줄기 큰 지천을 합하다가 드디어 경기도 남양주군 양수리의 가장 큰 합수 머리에서 금강산의 기운을 실은 북한강을 합한다. 금강의 기운까지 실은 한강이 옛 백제인 하남시 땅을 적시기 시작하면서 민족의 젖줄로서의 장엄한 역할을 시작한다. 최근 문화재청에서 기초 조사를 끝내고 초기 백제 왕릉군으로 잠정 결정을 내린 하남시 외곽은 한강이 이 땅에 현실 역사로 기록되는 문명을 만든 첫 흔적이다. 무릇 자연이고 삶이고 웅장하면 고요하지 못하고 고요하면 웅장하지 못하다. 한강의 기운은 말 없이 이 땅을 지켰고 지킬 것이다. 첫 발원지 검룡소에서부터 웅장한 용솟음으로 시작하고 있으나 그 기운은 의외로 다소곳해 느껴지는 기운과 보여지는 기운이 사뭇 다르다. 검룡소 주위에 묵언(默言)을 지시하는 어떤 팻말도 없되 방문자가 너나 없이 말을 잊는다. 그것은 조밀하지만 웅장한 검룡소의 기운이요, 그 물로 강 하류에 삼국을 시작으로 대한민국까지 키웠고 온 세계인을 모아 놓고 올림픽까지 치르고서도 아무 일 없던 조용한 강가인 듯 보임은 웅장하지만 고요함이다. 백제 고구려 신라국의 최절정기가 한강을 차지했던 시기와 일치함은 한강의 기운이 예사로운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역사적 흔적이다. 신라 말기 지방마다 득세하던 토호 세력들을 다듬어 고려를 만들었고, 고려 말의 혼란을 조선으로 다듬어낸 것도 결국은 한강의 기운이 아니었던가. 껍데기로나마 버티는 티를 내며 항일 투사를 자처하던 이들이 눈치껏 친일로 돌아서는 결심을 하게, 도무지 패망할 것 같지 않던 일본제국주의의 악령도 결국은 한강과 북악이 어울린 천하 명당의 기운에 눌린 것이 아니던가.
백제 이래 한강은 웅비하는 민족 기운의 샘이었다. 한강의 정기는 한강가에만 미치지 않고 이 땅 어디에고 그 왕성한 기가 닿는 민족의 강이었다. 선조들께 부끄러운 국가 부도 직전이라는 문턱을 놀랍게도 빨리 넘은 것도 한강의 기운이 큰 몫을 했을게다. 자연은 가장 큰 학교다.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아주 힘차게 초당 1400리터의 물을 뿜어내는 대지의 힘찬 펌프 검룡소를 보며 우리는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외침에도 쓰러지지 않던 이 땅 민초들의 강인하고 끈질긴 힘을 읽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겐 영겁의 물을 뿜어 자양분으로 이 땅을 흠씬 적셔 주는 검룡소가 있다. 마르지 않는 영겁의 기로 이 땅 전체를 지켜주는 한강이 있다. /곽교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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