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 읽을만한 책 소개

법정스님 무소유

햇살수풀 2006. 5. 8. 18:19
http://blog.daum.net/jib17/7122243에서 퍼 왔습니다.
정말 가까이 두고 읽으면서 실천하면서 살고 싶은 책입니다.

 

 

 불기 2550년 음력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다른 때 같으면 절을 찾든지 아니면 오름으로 갈 텐데, 아무래도 그 동안 게을렀던 업보(業報)를 생각하며 밀린 원고나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긴 눈이 피곤해질 무렵에는 결혼식 피로연도 가야 하겠고, 다시 써보다 4시가 되면 학교 선수들이 출전하는 전도체전 축구 응원도 가봐야 하겠지요.

 

 평소에 제가 좋아했던 법정 스님의 수상 2편을 실어 보냅니다. 연꽃은 지난 2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찍은 것이고, 절 사진은 엊저녁 사라봉에 운동 갔다가 보림사에서 찍은 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온누리 중생의 마음 밝아지기를 기원합니다. 좋은 날 보내세요. 

 

 

 

♧ 무소유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 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그렇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도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는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 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茶來軒)으로 옮겨왔을 때 어떤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 애들뿐이었다. 그 애들을 위해 하이포넥스인가 하는 비료를 구해 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그 애들을 위해 실내 온도를 내리곤 했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청했었다. 우리 다래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초를 보고 한결같이 좋아라 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갠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노사(耘虛老師)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가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 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서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 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 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한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승가(僧家)의 유행기(遊行期))에도 나그네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을 못했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야 했고, 분(盆)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쳐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아갈 듯한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 을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소유욕은 이해와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맹방들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나라끼리 친선사절을 교환하는 사례를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관계 때문이다. 만약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로 그 방향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지 못해 싸운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이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 있는 그대로가 좋다

 

 온 천지가 꽃이다. 풀과 나무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속 뜰을 활짝 열어 보이고 있다. 철 따라 꽃이 핀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다. 제 철이 와도 꽃이 피지 않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끔찍하고 삭막하겠는가.

 

 이 어디서 온 눈부신 꽃들인가.
 꽃은 하루아침에 우연히 피지 않는다. 여름철의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그리고 모진 겨울 추위 속에서도 얼어죽지 않고 참고 견뎌낸 그 인고의 세월을 꽃으로 열어 보이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입만 열면 경제와 돈타령만 늘어놓느라고 자신이 지닌 아름다운 속뜰을 열 줄을 모른다. 경제에만 정신을 빼앗겨 아름다움을 잃어간다.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지를 물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인간성이 소멸되어 간다고 걱정한다. 사람의 감성이 메말라간다고 한다. 그러면 무엇이 인간성을 이루는 감성을 키우는가. 사람이 타고난 본성을, 그리고 사람다운 특성을 인간성이라고 부른다. 철 따라 꽃이 피어나도 볼 줄을 모르고 달이 뜨는지 기우는지 자연현상에 아예 관심이 없다. 이것이 무엇에 홀리거나 쫓기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공통적인 증상이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의지해 살아가는 원초적인 터전이다. 생명의 원천인 이런 자연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점점 인간성이 고갈되고 인간의 감성이 녹슨다. 그래서 박제된 인간, 숨쉬는 미이라가 되어간다. 봄철에는 꽃을 보러 멀리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된다. 오고 가는 길가에서,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손바닥만한 뜰에서, 또는 돌층계 틈에서도 꽃은 핀다.

 

 건성으로 스쳐가지 말고 그 곁에서 유심히 들여다 보라. 꽃잎 하나하나, 꽃술과 꽃받침까지도 놓치지 말고 낱낱이 살펴 보라. 그리고 꽃이 놀라지 않도록 알맞은 거리에서 꽃향기를 들어 보라. 아름다운 세상이 결코 먼데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때로는 꽃 앞에서 자신의 고민도 털어놓고 세상사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눠 보라. 짐이 훨씬 가벼워지고, 꽃한테서 많은 위로와 가르침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사물을 가까이하면 은연중에 그 사물을 닮아 간다. 꽃을 가까이하면 꽃 같은 인생이 된다. 이것이 신비스런 우주의 조화다. 누구나 바라는 그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행복은 밖에서 오지 않는다. 행복은 우리들 마음 속에서 우러난다. 오늘 내가 겪는 불행이나 불운을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남을 원망하는 그 마음 자체가 곧 불행이다. 행복은 누가 만들어서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만들어간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은 우리 생각과 행위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천당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은 순간순간 그가 지닌 생각대로 되어 간다. 이것이 업(카르마)의 흐름이요, 그 법칙이다. 사람에게는 그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특성이 있다. 그것은 우주가 그에게 준 선물이며 그 자신의 보물이다. 그 특성을 마음껏 발휘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긍정적인 사고가 받쳐 주어야 한다.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일마다 잘 풀린다. 그러나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될 일도 안되고 일마다 꼬인다.

 

 이 세상은 공평무사하게 누구에게나 똑같이 하루 스물 네 시간이 주어져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쓰느냐에 따라 그 인생은 달라진다. 이 귀중한 우주의 선물을 우리는 순간순간 어떻게 쓰고 있는가. 긍정적으로 쓰고 있는가, 부정적으로 쓰고 있는가. 밝은 마음으로 쓰고 있는지, 어두운 마음으로 쓰고 있는지 시시로 물어야 한다. 우리가 지닌 생각이 우리 집안을 만들고 이 세상을 만들어간다. 명심할 일이다.

 

 다시 꽃 이야기로 돌아가자.
 풀과 나무들은 저마다 자기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그 누구도 닮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 풀이 지닌 특성과 그 나무가 지닌 특성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눈부신 조화를 이루고 있다. 풀과 나무들은 있는 그대로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신비를 꽃피운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신들의 분수에 맞도록 열어 보인다.

 

 옛 스승(임제선사)은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그가 서 있는 자리마다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리라.”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진달래는 진달래답게 피면 되고, 민들레는 민들레답게 피면 된다. 남과 비교하면 불행해진다. 이런 도리를 이 봄철에 꽃한테서 배우라.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해서 옛 스승은 다시 말한다.
“일 없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다만 억지로 꾸미지 말라. 있는 그대로가 좋다.”
여기에서 말한 ‘일 없는 사람’은 하는 일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이 아니다.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그 일에 빠져들지 않는 사람, 일에 눈멀지 않고 그 일을 통해서 자유로워진 사람을 가리킨다.

 

 억지로 꾸미려 하지 말라. 아름다움이란 꾸며서 되는 것이 아니다. 본래 모습 그대로가 그만이 지닌 그 특성의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철없는 사람이 꽃철에 철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내 곁에서 꽃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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