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은 산골이다.
앞 뒤로 산이 딱 막고 있다.
뒷산은 낮으막하나 앞산은 아주 높아서
에니콜 휴대폰도 소용이 없다.
요즘은 전파수신기를 설치해서 겨우 소통이 된다.
소통이 되다가도 아버지 가방에 들어 가신다가 되어 버린다.
신기하게도 우리집만 그렇다.
마을의 다른 집은 잘 소통이 된다.
나는 환경이니 생태니 따지기 전부터
자연이 주는 고마움과 즐거움과 두려움을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이방면으로 체계적으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다.
남편은 환경관련 일을 하면서 밥을 벌어 온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완전 생태맹에 가까운 수준이다.
부산토박이라 바다 밖에는 잘 모른다.
그것도 바닷가 근처 높은 곳에서만 살아서
개구리 소리도 이 동네에 와서 처음 들어 봤다고 한다.
내가 저건 무당개구리 소리, 저건 참개구리 소리,
저건 엉머구리 소리, 저건 황소 개구리 소리
하나씩 가르쳐 주면 신기해한다.
요즘은 잠자리 종류도 다양하고 매미 종류도 얼마나 다양한 지 살펴 본다.
주의를 기울여서 보면 아직은 많이 보인다.
밖에 나갈 때 마다 신기해서 물어 본다.
나도 다는 모른다. 다만 그 다양한 잠자리, 개구리, 매미들하고 얽힌
추억을 하나씩 얘기해 주면 그 많은 기억들을 부러워 한다.
지금 우리집 앞은 앞산 뒷산이 다 명산이다.(천성산, 대운산)
등산하기에도 좋은 산이라서 주말마다 몸살을 앓는 산이기도 하다.
우리는 늦지막히 아침을 먹고 슬슬 걸어 나오면 세시간 정도면
앞 뒷산 정상에 다 도착한다. 꼭대기에 올라야만 맛인가?
책 한 권 넣고 물 한병 넣고, 토마토 몇 개 챙겨 넣고
어슬렁어슬렁 좋은 곳에 자리 잡으면
이 보다 더 나은 날도 며칠은 없을 듯 싶다.
생태맹 아저씨가 어느날 오후 5시쯤에 산에 올랐다.
산에 사는 사람들은 산이 얼마나 빨리 어두워 지는 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산은 밤이 되면 얼마나 무서운 곳이 되는 지를 알고 있다.
톳재비(도깨비)들의 천국이 되는 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생태맹 아저씨는 아무것도 몰랐다.
도시 근처의 산이니까 밤에도 어둡지 않겠지 생각하고
어두운 산길을 자꾸 올라갔다.
사실 그 시간은 참 좋은 시간이다.
어스름이 묻어 오는 시간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 가는 시간이다.
거의 어둠이 묻어 오는 시간에 정상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 내려 와 갈림길에 도착하는 순간 캄캄해 지더라는 것이다.
그 다음 부터는 개똥벌레가 휙휙 날아 다니고
발 아래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정말 혼이 났다는 것이다.
무섭지는 않았냐고 물었더니
그런 것은 몰랐단다.
허풍이 아니라 생태맹들에게는
숲의 밤시간도 모르니까 하나도 안 무서웠던 것이다.
다만 발 밑이 캄캄해서 위험을 느꼈다고 한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마 우리가 모르는 산에 갔으면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밤의 숲에서는 익숙한 사물도 얼마나 낯설어 지는 것을 알고 있는데
아직은 낯 익은 곳보다는 낯선 곳이 더 많은 숲이다.
그날은 초이틀 쯤 되었으니 달도 없고
날씨까지 흐려서 별도 없는 캄캄한 밤이었는데
무섭지 않았다니 희한하네.
그래서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는 말이 맞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모르면 무서운 것도 모르는 것이지.
그런데 남편만 이런 사람들이 아니고 도시에서 자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생태맹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태맹으로 자란 사람들은 자연의 고마움과 즐거움도 모를 것이다.
경험이 최고의 환경 교육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 보다 체험활동의 프로그램을 많이 늘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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