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닷컴│강경윤기자] '백범' 김구 선생을 연상시키는 안경을 쓴 이 남자. 한국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 민족주의자 혹은 애국주의자냐고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꼭 그런 것은 아니다"였다. 단지 그는 다음 세대에 부끄럽지 않은 한국인이 되고 싶다는 말로 대신했다.
지난 1996년부터 서경덕씨는 200여개의 도시를 직접 방문하며 한국을 알렸다. 그동안 쌓은 항공 마일리지가 50만 점이 넘는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한국을 알리기 위해 연예인보다 더 바쁘게, 정치인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왔다. 지금까지 노력은 '무한도전'에 가까웠다.
◆ "평범한 대학생, 그의 운명이 바뀐 계기?"
12년 전 서경덕씨는 '세계일주'가 꿈인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1996년 그가 생애 첫 해외 배낭여행을 떠난 것도 그 이유에서다. 떨리는 마음으로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던 그는 당시만 해도 그가 대한민국 PR 전문가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로 유럽 배낭여행길에 올랐죠. '88 서울올림픽'도 멋지게 치뤘고, 월드컵 개최국 선정도 눈 앞에 둔 상황이라 '컴 프롬 코리아'(come from Korea)하면 다 알겠지하는 생각에 유럽땅을 밟았어요."
하지만 그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현지에서 만난 대부분의 유럽인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전혀 몰랐다. 오히려 북한(North Korea)를 더 많이 알더라는 것. 서경덕씨는 "이듬해 월드컵 개최지 선정이 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이어 그 때 그 기억이 자신을 한국 홍보 전문가로 이끈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길에서 만난 프랑스 파리의 교민들과 유학생들을 설득했어요. 8월 15일에 맞춰 에펠탑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가를 부르고자 했죠. 당일 에펠탑 앞에 약 300명의 유학생과 교포 등이 모였어요. 목이 터져라 애국가를 부르는데 모두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죠. 그 때 처음 '한국을 전 세계에 제대로 알리겠다' 결심했습니다."
◆ "2002 한일월드컵, 우리 잔치로 만들 수 없을까?"
2001년 국방의 의무를 마친 서경덕씨는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또 한번 한국 알리기에 나섰다.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하지만 일본을 먼저 기억하는 외국인들에게 '월드컵은 우리의 잔치'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마음 먹은 것. 그렇게 해서 준비한 게 바로 '잔디자켓'이다.
"미국의 CBS-TV '믿거나 말거나'에 잠깐 소개된 '잔디로 옷을 만드는 사람'을 찾아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상암동 월드컵 경기자 잔디로 자켓을 만들어 김대중 대통령에게 입히겠다는 계획이었죠. 뉴욕에서 잔디맨 찾기란 강남에서 김서방 찾기보다 힘들었습니다. 뿌린 전단지만 해도 수십만장. 뉴욕의 지하철이란 지하철은 다 뒤지며 잔디맨을 찾아 나섰죠."
그렇게 뉴욕 시내를 뒤지고 다닌 4개월. 서경덕씨는 결국 사설탐정을 찾아가 부탁했다. 서씨는 "4개월 동안 수집한 자료를 사설탐정에게 넘기니 하루만에 찾아 내더라"며 "4개월 동안 헛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허탈했지만 그래도 잔디맨을 만나고 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며 고생담을 털어 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잔디자켓. 대통령이 입었을까. 결과부터 말하면 실패다. 청와대 측에서 곤란하다고 한 것. 서경덕씨는 "물론 대통령이 입었다면 더욱 한국 월드컵을 알릴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상관없다. 상암동 경기장 잔디로 만든 자켓이 외신을 타고 세계로 퍼졌고, 그것만으로 당시 한국 월드컵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 "2005년, NYT에 '독도' 광고를 처음 내다"
2005년. 3년 전에도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실제로 그해 2월 27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해 대외적으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도 했다. 온 국민이 분노했고, 서경덕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비를 털어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세계 최고의 유력지 뉴욕타임즈에 광고를 실었다.
"감정적 대응보다 세련된 방법이 필요하겠다 생각했어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문, 각국 정부 및 기관, 기업 등이 신뢰하는 뉴욕 타임즈에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광고를 실어야 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 뉴욕타임즈 A면 (인터내셔널 면)에 실린 '독도는 우리땅(Dokdo is Korean Territory)'광고에요."
하지만 뉴욕 타임즈에 광고를 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신문인 만큼 돈을 낸다고 아무 광고나 실지 않더라는 것. 서씨는 4개월 수십개의 시안을 들고 뉴욕 타임즈 광고국을 들락거렸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광고국 직원들도 나중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인터내셔널 면 게재를 허락했다.
"광고 문구 하나 하나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여러개의 시안을 들고 뉴욕 센트럴 파크로 나가 일일이 조사를 했어요. 어떤 광고가 그들의 눈에 잘 들어오며 그들이 이해하기 쉬운지 살폈습니다. 다수의 의견을 받아 헤드카피로 '독도는 우리땅'을 강렬하게 심었어요. 서브카피로 '이 사실을 일본이 인정해야 한다'고 넣었죠."

◆ "영토문제, 역사왜곡…세계 권위지에 알린 우리 문제"
서경덕씨의 한국 바로 알리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후 월스트리트저널(2005), 워싱턴 포스트(2007), 뉴욕 타임즈(2008), 또 뉴욕 타임즈(2008)까지. 세계적인 매체에 4차례 광고를 더 실었다. 최근 가수 김장훈과 함께 뉴욕 타임즈에 실은 '독도' 전면광고도 그 중 하나다.
"세계 모든 기업이 필독하는 최고 권위의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에 동해 표기에 관련한 광고를 게재했습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는 동해(East Sea)'라는 광고였죠. 지난 2000년 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는 '동해'로 불렸고, 동해에 있는 독도 역시 한국의 영토이다. 일본은 이런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내용도 함께 실었어요."
이후 2007년에는 워싱턴 포스트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의견광고를 실었다. 다시 미국 의회의 '위안부 결의안' 상정을 앞두고 위안부 여성들에 관한 지지를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서경덕씨는 이어 미국 하원과 언론사, 정부기관, 일본 총리와 정부, 언론, 기업 등에 위안부와 관련한 잘못된 사실을 지적하고 진짜 진실을 편지로 적어 직접 보냈다.
게다가 올해 초에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난하는 의견광고를 냈다. 뉴욕 타임즈 18면에 실린 '고구려'라는 제목의 광고가 바로 그것. 그는 412년 당시 고구려가 만주를 차지하고 있는 한반도 주변의 지도와 함께 '고구려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한국 역사의 일부분이다. 중국 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 "세계 곳곳에 대한민국 브로셔를..."
서경덕씨의 한국 알리기는 크게 3가지다. 영토에 관한 것, 역사에 관한 것, 그리고 마지막이 문화에 관한 것이다. 서경덕씨는 "문화야 말로 가장 부드럽지만 가장 강한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다"며 과거 진행했고, 현재 준비중인 문화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그 중 하나는 한글 알리기 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언어, 한글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한국어 안내서죠. 한국어 안내서는 2가지 효과가 있어요. 일단 한국 사람이 외국 박물관에 갔을 때 우리 안내서를 보면 얼마나 뿌듯하겠어요. 박물관 감상도 용이하겠죠. 반대로 외국 사람이 한국어 안내서를 보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고유한 언어가 있구나'라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되겠죠."
실제로 그는 지난 2006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직접 제작한 한국어 안내서를 비치했다. 다음달에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한국관에는 영문으로 된 안내서를 제공할 예정이다. 모두 서경덕씨의 손으로 직접 제작한 안내서다.
뿐만 아니다. 한국미술을 세계 곳곳에 기증하는 프로젝트도 진행중이다. 일례로 서씨는 설치미술의 대가 강익중 선생의 도움을 받아 한국적인 미를 살린 한글 작품들을 세계적인 장소에 보내고 있다. 현재 유네스코 본부에 강익중 作 '청춘'이 상설 전시돼 있다. 올 가을에는 하버드 대학교에 강익중 作 '청춘예찬'을 기증할 예정이다.

◆ "아직, 한국에 대해 알리고 싶은 게 많아요"
지난 15일 일본정부는 교과서 해설집에 독도와 동해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서경덕씨는 이에 대해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일본의 교과서 역사 왜곡은 어느정도 예상을 했다. 이런 일본 정보의 전략에 휘말릴 필요가 전혀 없다"며 "국제사회 일본정부의 역사왜곡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알리고 독도가 우리땅인 것을 지속적으로 알리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교과서 문제에 대한 프로젝트도 이미 진행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에서 유학하는 후배들에게 부탁해 교과서를 현지에서 모으고 있다. 조만간에 미국 유력지에 이 같은 내용을 실을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 이 문제를 '문화'로써 풀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그는 "8월 말 개봉하는 독도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미안하다 독도야'를 세계 각국 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에 출품해 독도 문제를 정치적이 아닌 문화 코드로 풀고 싶다"며 말한 뒤 "한인 동포들에게도 영화 DVD를 보내 그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고 밝혔다.
서경덕씨는 지난 12년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장미빛 미래가 보장되지도 않았다. 그가 한국을 알리려 젊음을 바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대답은 간결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입니다. 부끄럽지 않으려고요. 지금 대한민국에는 영토와 역사 등 실타래보다 더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이 많아요. 그냥 넘어 간다면 훗날 나의 아들, 딸 세대 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것 같네요. 아직 세계에 알릴 것도 많고, 바로 잡을 것도 많습니다."
<사진=이승훈기자, 영상=김화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