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물을 지키자

펌글 김진애 한반도 대운하 상식으로 ...

햇살수풀 2008. 1. 28. 19:31


‘누가 해도 꼭 해야 하는 대운하’라는 이명박 당선자의 말을 들으면 ‘확신범’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확신범’(確信犯, aberzeugungsverbrechen, 독일어)이란

‘도덕적·종교적·정치적 의무 등의 확신이 결정적인 동기가 되어 행하여진 범죄 또는 그 범인’으로서, ‘사회가 급격하게 변동하는 시기나 종교적·정치적 사상의 급변기에 나타나며, 사상범·정치범·국사범 등의 범죄는 보통 확신범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이 말은 대운하를 주장하는 사람에 대해서가 아니라, 대운하의 대재앙 위험성을 제기하는 나에게 붙여졌던 말이다.
 

오마이뉴스의 ‘공간정치 읽기’ 연재에 나는 “한반도 대운하, 상식으로 판단하자: 대재앙 계획은 어떻게 탄생하는가?”라는 글을 071122일에 실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72225

곧바로 추부길(이명박 후보 한반도대운하특위 부위원장, 현재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 정책기획팀장)이 반론이 떴는데 그 글의 제목이 바로 “무식하면 용감하다”였다(071125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76387

또 다시 홍헌호기자의 반론이 떴다. “경부운하 이용 물류비는 15만원이 아니라 150만원 이상 , [반론] 추부길씨 '경부운하 대재앙? ...무식하면 용감하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82400

블로그에도 추부길의 반론에 대한 아이디 'yeomin’의 반론이 실렸는데, 제목이 “무식한 내가 물어본다” 였다.
http://blog.naver.com/yeonmin?Redirect=Log&logNo=100045615946



대운하의 대재앙 위험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면 무식하고, 대운하를 찬성하면 유식한 것은 아니렷다. 앞으로도 수많은 토론이 벌어질 터인데, 대운하의 효과와 위험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무식의 잣대로 들이대지 않기를 바란다. 



“여론은 수렴하되, 1년 후에 착공하고 임기 내에 완공한다”는 계획을 들으면 ‘무작스럽다’는 말이 떠오른다. 대운하의 대재앙 위험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무식하다고 치부하면서 무작스럽게 밀어붙이려는가?  

“한반도 대운하, 상식으로 판단하자!”라고 오마이뉴스에 썼던 내 글의 제목은 뜻 그대로다. 대운하 제안자들이 물류 혁명, 내륙관광 효과, 환경개선 효과를 아무리 주장해도, 전문적으로는커녕 상식으로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그 상식을 다시 짚어보자. 

1. 먹는 물에 배를 띄우면 수질 오염이 우려된다는 상식
2. 하절기 우량이 집중되는 기후에서 물을 가둬야 한다는 상식 
3. 물을 가둬두면 수질 오염이 우려된다는 상식
4. 강바닥을 긁어내고 둑을 쌓으면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상식
5. 배가 다니게 하려면 수많은 다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상식
6. 운하의 수송 시간이 상당히 길다는 상식  
7. 운하의 물류 경제 효과가 의문스럽다는 상식
8. 물류업계가 운하보다 도로, 철도, 연안수송 순으로 선호한다는 상식
9. 평지 지형인 유럽과 지세가 센 우리나라가 근본 조건이 다르다는 상식 
10. 낙동강과 한강을 이으려고 배가 조령을 넘는다는 게 무리라는 상식
11. 배 타고 다닐 만한 내륙 관광 수요가 의문스럽다는 상식 
12. 운하 연변 내륙 개발 부동산 투기가 우려된다는 상식
13. 운하 연변 문화유산 훼손이 우려된다는 상식
14. 경기 부양에는 도움될 지 몰라도 성장동력 제고 효과가 의심스럽다는 상식
15. 단기적 일자리가 많아져도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아니라는 상식
16. 토목 경제 부양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전철을 밟지 않겠느냐는 상식
17. 민자 사업(특히 BTL 사업)은 자칫 혈세를 삼키는 하마라는 상식
18. 수익성 우선 기업이 절대로 환경의 공공성을 책임질 수 없다는 상식
19. 대기업 컨소시엄에 다른 개발 특혜를 줄 것이 우려된다는 상식 
20. 국토환경의 공공성 보전에 국가의 무한 책임이 있다는 상식 

아무리 줄여도 이 정도다. 대운하 제안자는 이런 대재앙 우려 상식에도 불구하고 왜 대운하가 성장동력 확충과 국토환경 보전에 대기회가 될 수 있는지 합리적 근거를 통해 설명해야 한다. ‘상식을 뒤집는 새로운 발상’이란 말이 유행이지만 적어도 국토와 환경에 대해서만큼은 그렇지 않다. 모험을 하기에 국토환경은 너무도 중차대한 자산이고, 훼손은 순식간이지만 복원은 너무도 어렵기 때문이다. ‘생명의 물’이라 더욱 그러하다. 

한반도 대운하는 한나라당 대선 공약에 최종적으로 들어갔기는 했지만 슬그머니 밑으로 내렸었다. 그런데 당선되자마자, 당선자의 의지인지 1등 공신의 의지인지 다시 최상위로 올라가면서 사회를 들쑤시고 있다. 꼭 해야 한다고 했다가, 여론을 수렴한다고 했다가, 국비 투자를 한다고 했다가, 민자로 한다고 했다가, 당선자와 측근들과 한나라당 차원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으며 상식 자체를 흔들고 있다. 국민들을 갖고 노는가?   

인수위의 청와대 개편 안을 보면 “대통령 프로젝트 위원회”라는 것을 만든다고 한다. 참여정부에서 민간전문가들이 정책개발에 참여하던 국정과제위원회와는 달리 ‘사업을 직접 하는 프로젝트 위원회’다. 그 대상이 ‘대운하, 새만금, 나들섬’ 같은 ‘초거대, 초고속 프로젝트’일 것임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나치 독일의 영광을 외쳤던 히틀러의 ‘베를린 개조 프로젝트,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프로젝트’가 연상되어 어쩐지 불길하다.

대통령은 프로젝트보다는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가시적인 토목 사업에 대통령이 지나치게 관심을 쏟으면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외교, 통일, 재정, 복지, 경제, 산업 정책들이 후순위로 밀리고, 정책을 마련하고 지휘하는 공무원들도 당장 가시적인 프로젝트만 추진하려 들 위험도 있다. 사업 지상주의에 행정부가 중독되어서는 곤란하다.      

다시 확신범에 대한 네이버 백과사전을 보자. “확신범은 자기의 사상을 충실히 지키려고 한 결과 범행하는 것이므로, 형벌로써 그 확신을 버리게 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독일의 법철학자이며 형법학자인 G.라트브루흐는 1922년의 독일형법 초안에서, 확신범에게는 명예구금의 성질을 지니는 ‘구금형(拘禁刑:Enschliessung)’을 과하도록 규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