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1.30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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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 섬나라 쿠바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10년 멕시코의 한인들이 이주하면서였다. 1905년 제물포항을 떠나 유카탄반도의 ‘애니깽’(용설란) 농장에 계약노동자로 간 1030여명은 4년 계약기간이 끝나자 멕시코 각지와 미국·중남미로 흩어졌다. 이 중 280여 명이 바다를 건너 쿠바 사탕수수 농장에 일하러 갔다. 이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도왔다. 지금 쿠바에는 700여 명의 한인 후손이 산다.
▶400년이 넘게 계속된 스페인 식민통치에서 1899년 독립한 쿠바는 세계 시장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설탕산업을 비롯해 관광·도박 산업과 미국의 투자 등에 힘입어 경제발전을 계속했다. 1949년 한국이 쿠바와 국교를 수립했을 때만 해도 두 나라 국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 해 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쿠바는 한국에 279만 달러를 지원했다.
▶1959년 카스트로가 이끄는 공산혁명이 성공한 후 관계가 단절됐던 쿠바에 최근 한국이 다시 진출하고 있다. 쿠바 수입차량의 60~70%가 한국산 자동차이고, 냉장고·세탁기 등 한국산 가전제품도 인기가 높다. 쿠바 정부는 에너지난을 덜기 위해 전국에 544기의 이동식 발전설비를 세우고 있다. 계약 금액이 7억2000만 달러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를 따낸 것은 한국 현대중공업이다. 두 나라의 경제적 위상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쿠바의 ‘한국 바람’을 주도하는 인물이 최고권력자 카스트로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카스트로는 건강 악화로 동생에게 권력을 넘기기 직전인 지난해 7월 수도 아바나의 현대중공업 공사현장을 방문해 “한국인의 근면성과 적극성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쿠바가 올해 초 10페소(약 1만원)짜리 새 지폐를 발행하면서 이 이동식 발전설비를 도안으로 채택한 것도 카스트로의 이런 언급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고속 경제성장과 그 원동력인 기업의 활력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9월 리비아를 방문한 한명숙 총리에게 카다피 최고지도자는 한국 기업들의 적극 투자를 요청했다. 그는 리비아에서 초대형 사업을 벌였던 대우건설과 동아건설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처럼 경제발전을 바라는 국가지도자에게 한국은 좋은 모델이다. 우리가 지난 반세기 이룩한 성공의 역사를 외면하려는 사람은 왜 카스트로나 카다피까지 한국을 높이 평가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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