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거북이 꿈
황금 거북이 꿈을 꾸다(금강산을 다녀와서)
내가 꿈꾸는 일 중의 하나가 경의선 철도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부산에서 에스파냐까지 가는 것이다. 통일이 되지 않으면 절대 이루어 질 수 없는 꿈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머지않아 꿈이 이루어 지려나 보다. 금강산 육로 교통이 재개되고 머지 않아 철도가 개통될 예정이라 한다. 금강산 관광이 자율화된 이후로 늘 금강산에 가기를 꿈꿔 왔는데 마침내 나의 꿈이 이루어 지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나 대신 양보해 준 선배교사에게 마음껏 축복의 기도를 해 준다. 집결지와 집과의 거리가 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설레임과 긴장 때문에 몇 번 깨어 났는 지 모르겠다. 아침 네시 반에 일어 나서 준비물을 챙기며 부산을 떤 끝에 집결지인 태화강 둔치에 가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 대한민국의 교사집단은 통계적 확률도 비켜간다. 한 사람의 지각자도 없이 다 모여 있다. 시간 맞춰 도착한 내가 거의 후미이다. 모두 나처럼 밤잠을 설쳤으리라. 버스 안에서는 모두 곯아 떨어졌다. 하기는 차를 타고 이동 할 때는 자 두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시간 운용 방법이다. 중앙고속도로를 내달려 첫 휴식지인 동명에서 아침을 먹고 계속 북으로 가다 영동 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평창 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강릉에서 영동고속도로를 내려서 7번 국도를 타고 계속 북으로 간다. 마침내 도착한 곳이 통일 전망대.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휴대폰, 성능 좋은 망원 카메라, 잡지등 북에서 금지한 물건을 맡겨둔다. 관광증을 받고 유의사항을 전달 받는다. 갑자기 긴장된다. 특히 나는 이름이 조심스럽게 불러야 할 이름이라 본의 아니게 민폐 끼치게 생겼다. 이름이 같은 국어 선생님과 관광증이 바뀌는 소동까지 겪으니 한 층 마음이 조심스럽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료선생님 분들이 모두 이름으로 농을 건다.
이제 진짜로 북으로 가는 길이다. 대전차 장벽들, 철조망들이 최전방임을 알게 해 준다.남쪽과 북쪽의 통관 절차를 거치니 그제사 체제가 다른 곳에 간다는 실감이 난다. 한 나라이면서 외국 가는 것처럼 불편한 통관절차를 거치는 것이 번거롭고 귀찮게 여겨진다. 군사 분계선을 넘으니 허무한 느낌이 들 정도다. 이것 때문에 오십년이 넘도록 오도가도 못했단 말인가. 아이들 표현대로 어이가 없고 황당하기도 하다. 고향을 여기에 둔 사람은 분노가 생길 것도 같다. 주변에는 뾰족뾰족한 바위산들과 아늑한 호소가 있다. 우리일행들은 이것도 석호이구나 하면서 감탄하고 있는데 관광조장(가이드)이 설명하기를 군대에서 사용할 물을 모아 둔 감호라는 인공호수라고 한다. 비무장 지대라 그런 지 농경지로 이용될 만한 평평한 땅들도 모두 자연 생태가 완벽하게 복원된 늪지, 황무지가 되어 있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온대지방의 황무지로는 이런 곳이 없어 세계적인 생태자원이 될 거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그러나 도로를 제외한 지역에는 6.25 때 그리고 그 후의 냉전기간 동안 내내 양편에서 설치한 무시무시한 지뢰들이 수도 없이 매설되어 있다 한다. 지뢰를 제거하고 도로를 만드는 데 거의 삼 년이 걸렸다고 한다. 도로가에는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어 북한 주민들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가 없는 구조라고 한다. 어도를 내고, 로드킬을 막기 위해서 생태로를 건설하는 이 즈음 남한 사람들의 관광길을 보장해 주기 위해 불편을 감수해야 할 북한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의 민간인 동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온정리, 양지리, 봉화리등의 자연 지명을 가진 마을들이다. 학교는 공터를 가지고 있고 키 큰 나무들로 둘러싸여 져 있다. 주민들의 수에 비해 학교 수가 많아 보였다. 이것이 북한이 자랑하는 무상교육의 제도 덕분이라고 한다. 차창 너머로 북한 사람들이 나 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가장인 듯한 남자가 자전거를 끌고 여자는 아이를 업고 보통이를 이고 좀 큰 아이는 걸리면서 시냇가를 걸어 가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게 느껴졌다. 굴뚝 위에 모락 모락 연기까지 올라가는 모습이 어릴 적 시골집 풍경을 보는 것 같아 눈물을 쏟을 뻔 하였다.그러나,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가진 금강산이 나타나자 차창 밖의 정겨운 모습들은 사라져 버렸다.
배정 받은 숙소에 짐을 풀고 자유시간이다. 금강산 관광 편의시설을 이용하여 식사할 수 있는 식권을 받았는데 만원짜리이다. 우리일행들은 온반을 먹기로 하였다. 북한식 온반을 먹어 보고 싶었는데 관광지 음식에서 지역의 전통음식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어느 곳에서나 실감한다. 설렁탕도 아니고 곰탕은 더더욱 아닌 국적 불명의 음식이 나온다 먹을 만은 하지만 북한식 온반을 기대했던 우리로서는 실망을 감출 수 없다. 저녁을 먹고, 온천까지 슬슬 산책을 하면서 가기로 하였다. 허용된 도로의 바깥쪽은 파리하지만 눈빛만은 초롱초롱한 북한군 어린 병사들이 부동의 자세로 서 있다. 약 20분이 소요되는 이 거리를 이 지역내에서만 운행되는 셔틀버스로 이동한다. 마을에서는 무슨 행사를 하는 지 노랫소리도 흘러 나온다. 전기사정이 좋지 않은 지 캄캄한 가운데 멀리서 들리는 낯선 소음들이 체제가 다른 곳에 왔다는 낯선 느낌이 들게 한다. 금강산온천은 지하210m의 온수정에서 퍼낸 천연 온천수라고 한다. 옛날부터 잘 알려진 온천수다. 내부 시설도 좋고, 야외온천까지 마련되어 있어 겨울철에는 눈을 맞으며, 설경에 잠긴 금강산을 보면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아마 자유롭게 드나 들 수만 있다면 이 온천만으로도 경쟁력 있는 관광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이 모두 옹기종기 모여서 수다를 떠는 것도 재미나는 일이다. 아마 금강산이 아니면 이런 모습으로는 잘 만나지지 않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온천은 오전 12시부터 밤 9시까지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금강산에서 보내는 첫날밤이라 그런 지 사람들이 숙소로 갈 생각을 하지 않고 모두 여기저기 몰려 다니면서 시간을 보낸다. 우리 일행들은 북한사람들이 운영하는 포장마차에 들러서 여러 가지 술을 한잔 씩 마셔 본다. 아리따운 스므 남은 살의 북한 처녀들의 자태가 곱다. 떠들썩하고 흥겨운 관광지의 하루가 지나간다. 금강비취호텔은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는 숙소라 약간의 가구냄새가 배어 있지만 다른 숙소에 배정된 사람들이 부러워 하였다. 편의시설확충과 자유로운 여행 보장이 금강산 관광의 성공의 관건일 것이다.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장전항에는 안개가 자욱히 깔리고 호수같은 해안선이 환상적인 아침을 맞게 해준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약간의 산책 후 곧장 금강산으로 이동한다. 오늘은 구룡폭포와 팔상담을 보는 것이다. 신계사가 있는 신계 계곡을 들어서니 쭉쭉 늘어선 소나무들이 정말 이것이 동양화폭의 그 소나무구나 싶다. 눈이 많이 오는 지방이라 잔 가지들이 많은 소나무는 적응을 못하고 가지가 쭉쭉 뻗어 수관이 멋있는 나무들이다. 금강송 또는 미인송이라고 한다. 계곡 초입부터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 것이 올라갈 수록 더욱 더 장관이다. 계곡물이 얼어 붙어 있으니 망정이지 물소리가 들린다면 그 소리가 어떨 지 상상이 되지 않아 여름철에 꼭 한 번 다시 오리라 다짐한다. 시인묵객들이 자취를 남긴 흔적도 많지만 그 보다 더 많고 큰 규모로 적혀 있는 사회주의 구호들이 바위의 자연스런 모습을 흐리게 한다. 인생은 덧없다는 것을 이들이 모르는 것일까? 앞으로 자연의 모습을 복원한답시고 또 다시 손을 대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계획된 경제체제 속에 남아 있었기에 이 정도라도 보존이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좁고 가파른 길임에도 나뭇잎 하나 없이 쓸어 져 있다. 외화벌이 수단이라 공들이는 흔적일 것이다. 눈길은 미끄럽지 않도록 잘 닦여져 있다. 이런 것은 준비한 사람의 성의를 생각하면 슬퍼진다. 인간이 이런 일이나 해야 하는가? 해외여행에서 안마서비스를 받는 것만큼이나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 않아도 되는 쓸모 없는 일이나 하면서 보내기에는 정말 인생이 너무 짧지 않는가? 보초를 서고 있는 로봇같은 어린 군인들을 보는 것만큼이나 닦여진 길도 서글픔을 안겨준다. 그래도 기묘한 봉우리와 아슬아슬한 곳에 붙어 서 있는 의연한 소나무는 시원한 눈맛을 준다. 좀 조용해진 틈을 타 구룡연에서는 사진도 찍고, 팔상담에서는 내려다 보이는 계곡들을 한 장면이라도 놓칠 새라 카메라에 담아 둔다.
내려 오는 길에는 목란관이라는 북한에서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산채 비빔밥을 먹었다. 단 것을 가리는 내 입 맛에는 영 맞지 않지만 설탕 맛이란 모든 음식 맛을 같게 만든다. 가장 대중적 음식이라 모두들 맛있게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음식점 앞에서는 북한 화가들의 그림을 팔고 있었다. 사실주의에 충실히 따라서인지 금방 다녀 온 금강산 계곡이란 걸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북한에서는 주제화는 대접을 받지만 풍경화나 정물화에 대한 대접은 소홀하다고 한다. 그림을 그린 종이의 재질이나 물감의 재질은 좋지 않았지만 그림 솜씨만은 하나같이 뛰어나다. 아마 남한에서는 그 정도 솜씨의 그림이라면 귀한 대접을 받겠다 싶었다. 짧은 시간의 자유시간 동안 모두들 또 온천으로 달려간다. 한나절의 피로는 말끔히 사라진다.
오후에는 교육시간이다. 온정각이라는 공연시설이 잘된 곳에서 현대측의 금강산 관광개발에 얽힌 이야기가 감명 깊었다.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지역은 조선족, 북한사람, 남한 사람이 모두 어울려서 남한도 아닌, 북한도 아닌 새로운 나라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 지고 있는 중이다. 온갖 서비스 업종의 사람들은 조선족이고, 가이드는 남한 사람인데 현대 직원이 아닌 인력업체에서 파견되어 고용된 비정규직이라 한다. 북한 사람들은 주로 금강산 주변 지역 사람들이 고용되어 있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상에 철저한 사람들이라 한다. 철조망 너머의 북한 주민들과는 겉모습이 많이 다르다. 평양 교예단의 공연을 감상하였는데 재주가 뛰어났다. 특히 널뛰기나 줄타기 같은 교예는 전통의 것을 살린 점에서 의미가 깊다 하겠다. 지금 영화 왕의 남자가 최고기록을 갱신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중인데 아마도 대중들이 마당극 형식의 광대놀이에 열광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북한식으로 교예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아슬아슬한 장면에서 실수를 할 때나 어려운 기술을 보여 줄 때마다 탄성을 낸다. 우리가 안타깝게 여기는 것과는 달리 북한에서는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장차관 급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어렵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은 대우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유롭게 두면 아무리 대우가 좋아도 그 어렵고 힘든 수련과정을 견딜 사람이 몇 명이나 될런지.
교예를 마치고 인사할 때는 모두 사진기를 들고 쵤영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인사말을 할 때는 모두 뭉클한 감격에 가슴이 먹먹하였다. 저녁이 되어 흙돼지 삼겹살을 먹었다. 미리 세팅된 좌석에 차례차례 손님을 받고 정해진 자리에 앉아사 식사를 한다. 삼겹살은 비계가 적고 살코기가 많은 편이다. 야채는 배추뿐이다. 반찬 가짓수도 적어서 가격대비 만족스런 식사는 아니지만 관광지의 들뜬 기분에 모든 것이 녹아든다. 삼삼오오 끼리끼리 모여서 술도 먹고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도 찾으려면 하루도 짧게 지나간다.
삼일날 아침은 만물상에 갈 사람과 삼일포여행을 할 사람으로 나누어 진다. 만물상으로 가는 사람이 많으리란 기대와는 달리 모두들 삼일포로 가겠다고 한다. 다음에 반드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동해안의 석호중 가장 전형적이고 아름답다는 삼일포를 보겠다는 욕심에 해금강 삼일포 코스를 선택한다. 해금강쪽은 군사시설이 많이 있는 총석정을 개방하지 않아 반쪽짜리 코스가 되어 버렸다. 울산의 대왕암이나 이진리 해안과 유사한 점이 많다.
심지어 타포니 지형까지 나타난다. 이진리타포니 보다는 높은 곳에 발달해 있어서 지각의 융기정도를 비교하는 증가가 되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총석정을 보고 싶다. 삼일포는 정말 아름다운 호수이다. 나중에 섬들이 거북처럼 둥둥 떠서 바다로 가는데 황금 거북이 두 마리가 뒤따라 가는 꿈을 꾸었다. 꿈 속의 장면으로 저장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삼일포를 빙 돌아가면서 수구와 바다로 연결된 부분을 보지 못해 유감이다. 대나무숲을 만나서 대나무의 북방한계란 지리적 중요성 때문에 지키는 사람 몰래 사진을 찍어 둔다. 300불의 벌금을 내어야 하는 일인데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
북한에서의 마지막 점심은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는다. 북한식 음식맛이라고 할 수 있다. 음식재료의 맛맛인 담백한 음식 맛이다. 그러나 각종 조미료에 맛들어 있는 우리들의 혀는 음식맛을 구별 못할 만큼 굳어 있는 지 여기저기서 투덜거리는 소리들이 들려 온다. 관광지에 가서 고유의 음식을 맛보려는 시도를 하지 말라는 충고를 하고 싶다. 다만 벽면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들이 금강산을 다 돌아 본 듯 시원한 맛이다. 북한 최고의 착가들이 삼개월동안 공동 작업한 것이라 한다. 음식맛만 찾지 말고 시원한 눈맛을 즐기도록 하라는 당부를 드린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사람들은 가족과 친지를 위해서 선물을 마련하느라 부산하다. 환전했던 돈을 다시 바꾸고 카드에 충전했던 돈도 되돌려 받고, 잔액을 맞춰서 물건을 고르느라 바쁘다.
남한에서라면 아무렇지도 않을 소소한 일들이 금강산 지역에서는 금지된 것들이 많아 불편하다. 거기다 허용된 시간에 많은 사람이 함께 움직여야 하니 자유로운 드나듦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어색한 일이다. 한 업체만의 독점적인 운영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불편한 점들이 많이 있고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없으면 해결이 어려워 당분간은 어쩔 도리가 없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개방된 것이 어디인가 하는 감사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도 남북한 주민들간의 적대감과 이질감을 극복하고 민족의 동질감을 회복하는데는 자유로운 왕래 이상 좋은 점은 없는 것 같다. 북한 지역을 떠나면서는 차창 밖으로 보였던 처음 가족들의 모습이 아프게 각인되어 왔다. 북한 주민들도 우리들이 누리는 일상의 소소한 기쁨들을 함께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