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변화
처서가 지나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하다.
선선한 날씨 덕분에 자전거로 출 퇴근 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우리회사에서 시내버스가 다니는 큰 길까지의 거리는 약 1km이다.
제법 거리가 먼 이 길은 1980년대 초반 젊은시절 추억이 남아 있는 거리이다.
80년대 초반 이 길은 우리회사와 주변의 다른 공장 종업원들로 인해 호황을 누렸다.
당시 이 도로의 양편에는 각종 술집들이 즐비하였다.
주로 간단하게 한잔할 수 있는 간이 음식점들이었다.
어디를 가나 비슷하지만 공단 주변에는 허름한 포장마차 수준의 술집들이 많다.
닭 찌게를 전문으로 하던 대구식당…
돼지고기 삼겹살을 주로 팔던 영복식당과 덕성식당….
고 갈비를 전문으로 하던 애나식당….
이름은 모두 식당이지만 술을 파는 대포집들이었다.
그 외에도 많은 식당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술은 주로 소주를 마시고 여름철에는 막걸리도 많이 마셨다.
막걸리에다 사이다나 콜라를 타서 마시기도 하였는데
공장에서 일하고 퇴근길에 한잔하는 그 맛은 지금 생각하여도 정말 좋았다.
공장에서 퇴근하여 1km되는 골목길을 걸어야 시내버스를 탈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동료들과 퇴근하다가 어울리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변명같지만 음식점에서 나오는 냄새가 지나는 사람들의 옷 소매를 잡아 끌기도 하였다.
나는 80년대 초반 3교대 근무를 하였는데
갑반은 오후 3시에 퇴근하고 병반은 아침 7시에 퇴근을 하니 술 마실 기회가 드물다.
술은 주로 을반 근무를 마치고 마실 경우가 많았는데 을반은 밤 11시 퇴근이다.
을반을 마치고 한잔하다가 통행금지에 걸려서 오도 가도 못하였던 기억도 있다.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나서는 새벽까지 술자리가 이어진 경우도 간혹 있었다.
술판이 무르익으면 젓가락으로 술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요즈음은 노래방이라는게 있으니 젓가락 장단으로 노래부르던 이야기가 전설같다.
그런데 지금도 재미있게 생각되는 것은 술값이 모두 외상이라는 점이다.
현금을 주고 먹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외상으로 술을 마신다.
술판이 끝나면 주인이 공평하게 분배하여 기록을 한다.
다섯명이 술을 함께 마시고 술값이 만원이면 개인당 2000원씩 외상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월급날 한바퀴를 돌면서 외상값을 갚는 것이다.
당시에는 현금으로 월급을 주었기 때문에 월급날은 주머니가 두둑하였다.
80년대 초반 나의 월급은 대충 20~30만원 정도로 기억 되는데
한달 외상값이 보통 1~ 2만원 정도 되었다.
명절이 되면 술집 주인들이 외상값을 갚는 사람들에게 양말을 선물하기도 하였다.
세월이 흐르고 자가용으로 출 퇴근하는 세상이 되면서 술 문화가 바뀌었다.
술을 마시면 운전을 할 수 없으니 퇴근하고 동료들과 한잔하는 빈도가 줄었다.
그 후 I M F 라는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동료들과 술마시는 것은 거의 사라졌다.
요즈음은 공식적인 회사의 회식이 아니면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나만 그런게 아니고 대부분이 그런걸로 알고 있다.
술을 마시지 않아서 좋은 점이 많이 있지만 동료들과의 대화는 부족하다.
공장의 분위기가 예전과 많이 다른 것은 이러한 술 문화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이제 건강을 염려하는 나이가 되어 걷거나 자전거로 출퇴근하게 되었다.
추억의 골목길을 걸어가면 내 마음은 아직 8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번성하던 옛 술집들은 어디에도 없다.
그 자리에 건물은 있지만 업종도 다르고 사람들도 다르다.
세월은 흐르고 추억만 남아 있는 골목길이 되었다.
아!
가버린 그 세월이여.....
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