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리에서 만난 사람들
일전에 엠비씨 촬영 및 취재 동행으로 이진리에 갔습니다.
7,8분짜리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작업이 거의 하루 걸렸습니다.
중간중간 소나기도 오고 해서 촬영도 힘들었습니다.
예전에 방송국 스튜디오 안에서 토론 프로그램의 방청객으로 참여 한 적이있어서
방송국 사람들도 힘들게 일하는 줄은 짐작은 했지만
야외에서의 취재동행은 처음이라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줄은 몰랐습니다.
이진리를 소개해 주셔서 저희들로서는 고맙기 짝이 없었지요.
거기에서 텐트를 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그 곳을 어떻게 알았는 지 궁금했기 때문이지요.
늙수그레한 아저씨와 일가족인 듯 싶었습니다.
어머 아저씨 여기 어떻께 아시고 오셨어요?
아저씨 눈빛이 왠 젊은 여자가 왔다갔다 하는 지 호기심도 좀 있으시고
너보다 백배 천 배 이곳을 잘 안다는 듯한 가소롭게 보시는 듯한 눈빛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는 내가 어릴 때 맨날 놀던 곳이라오.
아 그래세요?
이진리 사셨어요.
아니 나는 당월인데 당월하고 여기는 넘어지면 코 닿을 데 아닌가벼?
아저씨 그럼 이곳이 없어진다는 것 아세요?
아 그래 올해가 마지막일 지 내년이 마지막일 지 몰라 나는 해마다 여기 온다오.
저기까지 방파제 들어 선 걸 보니 아매 올해가 마지막이 될런지 모르제?
아저씨는 어디에 사세요. 덕신 살지러.
더 말씀을 나누고 싶었으나 일행과 일정이 바빠 얘기는 거기서 중단되었어요.
저는 고향이 시골인 사람의 정서를 잘 압니다.
도시에서 살았던 세월이 두 배나 더 길어도 의미 있는 꿈 속의 배경은 늘 고향이지요.
등장 인물은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인데도요.
공업단지를 고향으로 둔 사람은 고향이 흔적도 없어져 버렸지요.
그 사람들 기억 속에서나 존재 합니다.
우리학교에도 원산리가 고향인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 선생님께서는 고향집에 가 보았더니
어떤 공장의 출입문이 자기 집이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차라리 수몰민이 부럽다고 하더군요.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고향이라고 아쉬워 하시더군요.
온산 해변에 살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온산공단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을 위해서도
이진리 해안은 보존 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항변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