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왜 동네 구멍가게까지 못살게 구나요`
"25년동안 슈퍼마켓으로 먹고 살았는데 요즘처럼 힘든 적은 없었어요. 대기업이 왜 동네에까지 들어와 장사를 하는지.."2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경기지방경찰청 인근 슈퍼마켓과 편의점은 매출이 반 토막이 나 일손을 놓고 있었다.
60㎡ 규모의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모(50)씨는 "월 200만원 어치는 팔았는데 지난달 매상은 80만원에 그쳤다"며 "단골손님도 상당수가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편의점 주인도 "매출이 60∼70%는 줄었다"며 "주류나 식품류 등 이윤이 많은 것은 아예 안 팔리고 기껏해야 쓰레기봉투를 사거나 버스카드를 충전하려는 손님만 있다"고 울상을 지었다.
지난 4월 3일 기업형 슈퍼마켓(SSM.Super Super Market)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연무점이 연무주공아파트단지 건너편 5층짜리 상가건물 1층에 입점하며 빚어진 현상이다.
200㎡ 규모의 '미니 홈플러스'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연무점은 자동문을 설치하는 등 매장을 대형 할인점처럼 꾸미고 제복을 차려입은 종업원들의 세련된 매너로 젊은 고객층을 사로잡고 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연무점 주변 슈퍼마켓 업주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가격경쟁력도 있지만 홈플러스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줘 신혼부부 등 젊은 사람들이 특히 선호하는 것 같다"며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연무점 반경 500m내 슈퍼와 할인점은 문 닫을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연무점에서 600m 떨어진 연무시장의 600㎡ 규모 대형마트도 매출 감소로 2주전 금목걸이를 경품으로 걸고 파격세일을 했지만 손해만 본 것으로 전해졌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연무점이 5월 19일부터는 24시간 영업에 나서면서 편의점도 직격탄을 맞았다.
30m 떨어진 곳의 편의점 주인 A씨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영업할때는 그나마 손님이 있었는데 이젠 야간 손님도 뚝 끊겼다"며 "얼마전 중소기업청에서 실태조사를 나왔는데 '우리도 이정도인줄 몰랐다. 기다려보라'고만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기도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89개 기업형 슈퍼마켓이 도내 27개 시.군에서 영업중이다.
동네에 SSM이 들어서면 반경 2㎞내 상점은 30~40% 매출이 감소된다는 게 슈퍼마켓, 편의점 주인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경기남부 슈퍼마켓협동조합 홍광표(61)이사장은 "수원과 용인, 평택, 오산, 화성 등 경기남부 5개 시에만 20개정도의 SSM이 1-2년사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 조합원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며 "조합원 350여명중에 반년 사이 10여명이 가게를 접었다"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재래시장 상인연합회, 유통업체 대표 등과 대책위원회를 꾸려 대응하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SSM의 '동네 시장' 잠식이 염려했던 상황 이상으로 확인되자 안양지역 상인들과 시민단체는 대책위원회를 구성, SSM의 입점 자체를 막겠다고 나서고 있다.
안양 중앙시장 상인이 주축인 된 '기업형 슈퍼마켓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입점반대추진위원회' 이두천(60)수석위원장은 "중앙시장에서 250m 떨어진 곳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8월 개점을 준비하고 있다"며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들어서는 건물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며 끝까지 입점을 막겠다"고 말했다.
안양지역 165개 시민.사회단체 연합인 '바른 안양사회만들기 시민연합'도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입점을 저지하기 위해 홈플러스 안양점과 평촌점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안양시 관계자도 "올해 중앙시장 활성화를 위해 10억원을 투입할 계획인데 SSM이라는 예기치 않은 복병으로 어려움이 있다"며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운영하는 삼성테스코에 공문을 보내 입점 철회를 요구했지만 응답이 없다"고 말했다.
성결대 유통물류학부 한종길 교수는 23일 수원시청에서 열린 'SSM 진출 확대에 따른 지역상권의 대응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지역 및 도시의 재생전략 차원에서 자치단체의 유통정책을 주문했다.
그는 "단순한 규제논의 보다는 지역사회의 관점에서 지역유통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며 "소매업이 발전하지 못한 도시는 활기가 없고 도시의 문화가 생성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시재생과 관련해 도시계획, 디자인, 예술분야와 더불어 유통정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수원 연무점 반경 30m내 편의점 주인 A씨는 "나도 SSM을 옆에두고 편의점을 찾지 않는다"며 "수천만원의 손해를 보겠지만 계약이 끝나는 내년 1월에는 가게를 정리할 계획"이라며 3년간 끊었던 담배를 피워물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