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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계의 ‘종자전쟁’] 유전자원도 중요

햇살수풀 2009. 4. 10. 10:45

[세계의 ‘종자전쟁’] 유전자원도 중요
한국, 유전자원 보존에 박차 가해
수원에 농업유전자원센터 신축 저장시설 문 열어… 최대 50만점까지 보존 가능
“유전자원 보존국 세계 5위 목표… 보존의 경제적 가치는 2010년에 6조원에 이를 것”

수원시 권선구의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유전자원센터 직원들은 연말까지 대대적인 이사를 해야 한다. 15만여점의 유전자원을 인근에 신축한 첨단 유전자원센터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유전자원센터가 보존 중인 15만점의 유전자원은 유전자원을 보존 중인 국내 41개 기관 중 최대 규모. 1700여종에 이르는 식량, 특용, 원예 작물의 종자와 600여종의 미생물 자원이 특수 저장시설에 보관돼 있다. 벼만 하더라도 세계 각국의 종자 2만점이 보관돼 있다. 1987년 농촌진흥청 종자은행이 문을 연 이후 연구원들이 국내외를 돌면서 수집한 유전자원을 한곳에 모아둔 것이다. 이곳에 보관 중인 유전자원의 70%가 외국종이다.

▲ 11월 3일 준공식을 갖는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의 국립 농어유전자원센터(좌), 농업유전자원센터에 보존자원 구분(우).

종자를 비롯한 각종 유전자원은 공기나 물과 같은 존재다. 증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고마움을 잘 못느끼지만 유사시 특정 자원이 있느냐 없느냐는 국익(國益)의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종자는 배고픔을 해결하거나 돈이 되는 새 품종을 개발하는 소재가 된다. 고려시대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몰래 숨겨왔다는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씨앗 하나가 부(富)의 원천이 된다.

유전자원은 그 자체로서도 보존가치가 있다. 유전자원은 40억년 이상 진화된 생명체의 역사적 산물로 한번 소실되면 두 번 다시 재생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2000만종으로 추정되는 지구 생물 중 매년 3만종이 멸종되고 있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21세기 들어 세계 각국은 유전자원 주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04년 6월 발효한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의 식량농업식물 유전자원 국제조약(ITPGRFA)에서 보듯 이제 남의 나라 씨앗 하나도 함부로 쓸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ITPGRFA가 인정하는 농부권(Farmer’s Right)은 특정국에서 오랫동안 재배해온 재래종을 이용해 신품종을 개발했을 경우 재래종 보유국에도 개발 이익을 나눠주라는 것이다.


재래종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면 멀쩡하게 눈뜨고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1960~1970년대 녹색혁명을 이끈 신품종 밀의 조상이 우리의 앉은뱅이 밀이라는 건 아직 유력한 학설에 불과하지만 콩은 한국 등 동북아가 원산지이다. 미국에서 콩 품종개량의 바탕이 되는 35개의 미국 토종 품종 중 적어도 6개 품종은 한국 토종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라일락 시장의 30%를 점유하는 ‘미스킴 라일락’은 한국 북한산 백운대 털개회나무에서 비롯됐다. 1947년 미 적십자협회 직원이었던 미더 박사가 한국 근무 중 백운대에서 씨앗 12개를 채집해 간 것이 이 품종의 출발이었다. 미더 박사는 자신을 도운 타자수 이름을 따 ‘미스킴’이라 하였다. 

산업스파이 전쟁처럼 유전자원의 절도와 복제도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2005년 농림부 장관에게 보고한 주요 업무계획에 따르면, 조생황금배 등 우리가 거액을 들여 개발한 신품종이 이미 중국으로 유출된 것을 비롯해 2002년 이후 농진청, 관세청이 적발한 신품종 묘목의 중국 밀반출 시도가 5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조생황금배는 공식적으로 중국으로 나간 기록이 없지만 이미 중국에서 버젓이 재배되고 있다. 아직 국내에는 농업유전자원 유출 행위를 처벌할 근거법도 마련돼 있지 않다.


선진국들은 유전자원의 중요성을 일찍 인식해 18세기부터 자원 확보와 보존에 열을 올렸다. 종자, 미생물에다 가축, 곤충 등의 생물자원까지 포함한 유전자원 보존 규모를 따져보면 미국이 46만점으로 세계 최고다. 그 뒤로 중국 37만점, 러시아 32만점, 인도 25만점, 일본 23만점 순이다. 자원 빈국인 한국은 자원 확보전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22만점으로 세계 6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유전자원 확보 노력은 이제 시작이다.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토종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국내 토종 생물은 약 10만종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파악된 종은 식물 8271종과 포유류 123종, 어류 905종, 조류 394종, 양서·파충류 41종, 곤충류 1만1853종 등 모두 2만9916종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은 자국 토종 생물 9만여종을 파악하고 있다.

11월 3일 준공식을 갖는 농업유전자원센터의 신축 저장시설은 우리의 유전자원 확보 노력에 전기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26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2004년 10월부터 짓기 시작한 이 저장시설은 연 건축면적 3352평에 최대 50만점의 유전자원을 보존할 수 있는 규모다. 기존 저장시설의 3.2배 규모로 유전자원 보존시설 중에서는 세계적 수준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에 중·장기 저장고와 영하 196도를 유지하는 초저온 보존고, DNA 뱅크, 검역온실, 표본실 등을 갖추고 있다. 최근 중국 등 외국 전문가들의 견학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 신축 농업유전자원센터의 첨단 저장고

현재 시험 가동 중인 이 시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장기 저장고. 영하 18도의 온도에서 종자를 100년간 보존할 수 있다. 로봇 시스템이 도입돼 입출고를 모두 자동으로 할 수 있다. 종자 보관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와 습도를 맞추는 일. 벼의 경우 4주 이상 건조시켜 자체 수분 함량을 5~7% 정도로 떨어뜨린 후 영하 18도, 40%의 습도를 유지한 상태에서 장기 보관한다. 

농업유전자원센터는 자체 수집이나 의뢰 등으로 연간 1만점의 유전자원 보존 요청을 받는데 이를 무작정 다 보존하는 게 아니라 자체 심사를 거쳐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자원만 보존한다.

매년 1만점 중 약 10%가 보존된다고 한다. 그래도 기존 시설에서는 이미 보존 자원이 넘쳐나 시설 확장이 시급했다는 것이 농업유전자원센터 측의 설명이다. 종자의 경우 당초 보존량의 85% 이하로 떨어지면 증식을 통해 보존 씨앗 수를 늘리라는 게 관련 국제기구의 권고사항이라고 한다.

농진청 김태산 유전자원과장은 “유전자원 보존의 경제적 가치는 2010년쯤 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며 “2013년까지 세계 5위의 유전자원 보존국으로 올라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육종의 중요성
“우량 종자가 한 나라의 농업을 좌우”
한국의 벼ㆍ무ㆍ배추ㆍ고추 육종은 세계 최고 수준…
육종은 농민이나 소비자 모두에게 혜택 줘

식물 육종(育種)은 농민들이 재배하는 품종의 성능과 특성을 현재 품종보다 더 낫게 개량하는 일련의 농학적 접근방법이다.

예컨대 1정보에 약 5톤이 생산되는 쌀을 6톤 또는 7톤 정도로 증수되는 품종으로 육성하고자 하든가, 역병이나 탄저병으로 매년 2000억~3000억원의 손실을 입고 있는 고추를 농약을 치지 않고도 이런 병에 저항성을 갖는 내병성 품종으로 육성하려 하든가, 현재 당도가 약 12도 정도인 수박을 2~3도 더 달게 만들려고 하든가,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흑장미나 푸른색 장미 품종을 새로 만들려고 할 때 사용되는 농학적 접근 방법이 식물육종이다.

▲ 충남 농업기술원 논산 딸기시험장에서 개발한 국산 딸이 '매향'.


식물육종의 역사는 참으로 길다. 인류가 동물과 다름없는 수렵생활에서 농경문화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신석기인이 식물육종을 했었기 때문이다. 약 1만년 전 지구상에는 지금 현 인류가 재배하고 있는 벼, 보리, 콩, 고추, 수박 등과 같은 작물은 전혀 없었다. 그 당시는 현재의 잡초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현재 작물의 원시적 조상들만이 있었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그 당시 벼(현재 벼 품종의 수천 대 조상 벼)의 수확량은 지금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1정보당 50㎏ 미만이었을 것이다. 약 1만년 전 신석기인이 야생에서 벼 이삭을 주워서 자기들이 사는 움막 근처에 심었을 것이고, 수확물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먹지 않고 다음해 종자로 다시 심었을 것이다. 신석기인이나 그 이후 농민들이 자기 밭에서 자라는 식물들 중에서 수량이 제일 많은 것이나, 맛이 제일 좋은 것, 병에 강한 것 등을 바로 먹어 버리지 않고 다음해 농사의 재료로 사용하였던 것이 바로 육종의 시작이고, 이런 육종 덕분으로 우리 인류는 동물과 같은 수렵 생활에서 인간다운 농경문화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씨없는 수박'을 개발한 국내 육종학의 개척자 우장춘 박사(1898
~1959)

지구상에 생존했던 가장 위대한 육종가가 누구였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유전법칙을 발견한 멘델이나, 1970년 녹색혁명의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던 보로그 박사나 우장춘 박사가 아니라 1만년 전에 살았던 신석기인과 바로 이어 전문적인 농사에 종사했던 농민들이라고 말하겠다. 왜냐면 그들이 농경문화를 시작한 지 약 3000~4000년 사이에 야생의 잡초와 같았던 원조상 식물들이 현재 우리 인류가 재배하고 있는 모양의 작물로 바뀌었다. 한 예로 잠두라는 콩과 작물은 이 기간 동안 종자의 크기가 무려 100배나 커졌다.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내는 육종방법은 다양하게 분화 발전되어 왔다. 가장 오래된 육종 방법은 집단선발법으로, 신석기인이나 그 이후 수천 년간 농민들이 그 학문적인 원리 원칙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큰 효과를 본 방법이었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자기가 재배하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먹지 않고 다음 해에 종자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다음은 도입육종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문익점 선생이 붓 대롱에 숨겨온 10개의 목화씨이다. 이 중에 오직 1개만이 발아했고, 그 결과가 우리 한민족의 의복 혁명이다. 목화가 전래되기 전까지 지배 계급은 비단, 하층 대중은 한겨울에도 삼베옷으로 견뎌야 했다.

엄밀히 말해 현재 우리가 재배하는 거의 모든 작물은 외래종이다. 우리 역사상 언젠가 외국에서 여러 루트를 통해 도입 육종된 것들이다. 현재 우리 음식생활에 필수불가결한 고추도 사실 우리에게 전래된 것이 불과 400년 정도에 불과하다.현대적 의미의 식물육종은 1900년 멘델의 유전법칙이 발견되고, 전문적인 육종회사가 생겨나면서 시작되었다. 현대 식물육종은 2개의 다른 품종을 인위적으로 교잡하여 양친의 장점만을 취한 새로운 품종을 육성하는 것이다. 이를 교잡육종법이라 한다. 현재 벼와 같이 자가수정하는 대부분의 작물 품종은 이 방법으로 육성된 것들이다.

1940년대 미국에서 1대 교잡종 또는 F1 품종을 만들어 내는 잡종강세육종법이라는 것이 개발되었고, 현재 우리나라 채소의 경우에는 상추를 제외한 거의 모든 채소가 1대 교잡종을 재배하고 있다. 이는 특성이 매우 다른 양친 간의 교잡에 의해 생겨난 잡종 1대가 양친보다 월등히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는 잡종강세라는 유전현상을 실용화한 것이다.
최근에는 생명공학적 기술을 이용한 유전자변형 품종을 육성하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1996년 처음으로 세계에서 약 160만정보에 재배된 유전자변형 품종들은 불과 10년 만인 2005년에는 무려 9000만정보에서 재배되고 있다. 콩, 옥수수, 목화, 유채 등에서 크게 성공하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일절 재배되고 있지 않다. 다만 외국에서 수입하는 콩과 옥수수의 경우에는 각각 약 60%와 30% 정도가 유전자변형품종으로 추정되고 있다.

식물육종은 인류를 기아로부터 해방시켰다. 벼를 포함한 주요 식량 작물들은 지난 1만년간 최소한 100배 정도 수량이 증가하였다. 지구의 인구는 1만년 전에는 400만명에 불과하였고, 첫 10억명은 1810년에, 그리고 60억명은 2000년에 도달했다. 현재도 매년 8000만명이 늘어나고 있다. 2020년에는 약 80억~85억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폭발적인 인구증가에도 불구하고 지구적인 대기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식물육종과 재배방법의 개선 때문이다.

1년 내내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 데서도 식물육종의 가치와 중요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계절이 다른 조건에서도 생육하고 결실할 수 있는 새로운 품종을 육성했고 ‘백색혁명’이라고 하는 플라스틱 하우스 재배방법의 개발 덕분이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봄에 재배할 수 있는 결구 배추나 무 품종이 없었다. 오직 가을 김장 배추와 무 품종만이 있었다.  당시 가을 김장철에 심어야 하는 품종을 봄에 심으면 전부 일찍 꽃이 피어서 전혀 상품가치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봄에 꽃이 아주 늦게 피는 배추와 무 품종을 우리의 선배 육종가들이 개발함으로써 비로소 1년 내내 신선한 채소를 재배하고 소비하게 된 것이다.

‘종자전쟁’ 또는 ‘유전자원전쟁’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이때에 한 나라의 농업경쟁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그 나라의 육종경쟁력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벼, 무, 배추, 고추 등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육종 경쟁력을 갖고 있다.


재배 농민에게나 소비자 모두에게 실질적으로 크나큰 혜택을 가져다 준 식물육종에 대하여 일반인이나 심지어 재배 농민들마저도 그 가치와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크다.

새 품종은 결코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후지’라는 사과는 무려 29년, ‘금싸라기’ 참외는 17년의 어려운 산고를 거쳐서 세상에 태어났다. 현재 모든 품종들은 최소한 7~8년, 그리고 과수의 경우는 수십 년 동안 전문가들이 방대한 경비를 투자한 끝에 태어난 피와 땀의 결정체이다.

최근 새 품종에 대한 로열티 문제가 사회화되면서 로열티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강한데 이는 원칙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육종은 많은 경비와 시간이 소요되는 사업이므로 이 사업이 앞으로도 계속 확대 재생산되려면 육종에 투입된 예산을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로열티이다. 물론 오랫동안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고 무상으로 재배해 왔던 농민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겠지만 농업의 국제경쟁력을 긴 안목으로 키워야 하는 우리로서는 식물육종의 가치와 중요성을 재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국내 시장
국내 배추·무·고추씨 절반 이상을 외국 회사가 공급
과수·화훼는 거의 수입종…
2001년 장미 파동 이후 외국에 주는 로열티 1000억원이나 돼

‘우리 식탁이 외국 종자에 점령됐다’는 말은 표면상 틀린 게 아니다. 우리의 대표적 먹을거리인 배추, 고추, 무 등의 종자가 국내에 진출한 외국 종자회사에 의해 절반 이상이 공급되는 게 현실이다. 또 시금치, 당근, 양파, 토마토, 딸기 등의 채소 종자는 일본산이 80%를 넘어섰다. 하지만 ‘국경 없는 종자 전쟁시대’에 무엇이 진짜 외국 종자인지는 엄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팔리는 모든 종자는 한국종자협회에 등록을 해야 한다. 이때 수입종이냐 토종이냐를 가르는 기준은 육종가(새 종자를 만든 연구자)가 국내에 있느냐 없느냐다. 외국의 육종가가 만들어낸 품종은 한국의 기후와 토질에 맞는지 2년간 수입 적응성 실험을 해야 판매가 가능하며 이를 통과하면 수입종으로 분류된다. 반면 외국회사가 소유권을 갖고 있는 종자라도 한국의 육종가가 만들어냈다면 토종으로 분류된다.

때문에 배추, 고추, 무의 경우는 ‘외국 종자가 절반’이라고 표현하면 어폐가 생긴다. 국내 종자회사를 인수한 외국 회사들이 종자를 공급하고 있긴 하지만 인수된 국내 회사에서 만들어졌던 품종이 계속 팔리고 새 품종도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준을 적용한 농촌진흥청의 자료에 의하면 배추, 고추는 100%, 무는 95%가 국산 품종이다.

농진청의 자료에 의하면 보리, 밀, 콩, 벼 등의 주곡 작물은 국산 품종 비율이 압도적이다.<표 참조> 채소는 마늘, 고추, 배추, 수박처럼 100% 국산 품종에서부터 80% 이상 수입종인 양파, 토마토까지 들쑥날쑥이다. 서울대 박효근 교수(농학)는 “채소 종자는 외국에서 채종해 들여오는 물량을 제외한 순수입 규모가 연간 500만달러 정도이고 한국에서 수출하는 규모는 연간 1600만달러로 수출이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 화훼 중 유일하게 국산 품종이 석권하고 있는 접목 선인장 농가.
반면 과수와 화훼는 수입종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고 특히 화훼는 100% 수입종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단 화훼 중 선인장의 경우는 100% 국산 품종으로 접목 선인장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한국 선인장의 위상을 수치로 보여주고 있다.   

농진청의 한 관계자는 “국가 핵심작목인 벼와 민간주도형 채소인 무, 배추, 고추는 세계적 수준의 육종기술과 우수한 개발 품종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벼, 보리, 콩, 감자, 옥수수(사료용은 제외) 등의 5대 작물에 대해서는 정부보급종자를 개발해 농가에 공급하고 있다. 이들 종자는 수출입 신고를 의무화하는 등 국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보릿고개’를 넘기게 한 통일벼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육종 기술은 특정 작물에 관한 한 세계적 수준에 오른 게 사실이다. 육종 기술을 가진 나라도 미국, 일본, 네덜란드, 프랑스, 이스라엘, 한국 정도로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외국 거대 종자회사들이 들어와 주도하는 시장으로 변하면서 한국의 종자 시장은 국제 기준에 비춰볼 때 미흡한 부분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외국 종자회사들과 한국 회사들과의 품종 개발에서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은 내병성(耐病性)을 어느 정도 파악하느냐는 문제다. 이는 새로운 품종이 어떤 병에 강하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충분히 알릴 수 있을 만큼 유전적 정보를 파악하고 있느냐는 문제다.

종자를 상품화하면서 내병성을 구체적으로 명기하면 쓸데없는 농약을 쓰지 않을 수 있어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소비자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이 종자를 수입할 때 내병성에 대한 자료를 의무적으로 요청하는 이유다. 1990년대 흥농종묘가 국산 고추 품종으로 미국 시장을 개척할 당시 무려 8년의 세월이 걸린 것도 우리에게는 낯선 내병성에 대한 자료를 미국이 요구했기 때문이다.하지만 국내 종자회사들은 아직도 내병성에 대해 어둡다. 과거 새 품종을 사간 농민과 종자회사들 간에 농작물의 ‘집단 의문사’를 놓고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도 품종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종가들의 의욕을 살려나갈 품종보호도 보다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우리는 종자산업법에 근거해 1997년부터 식물신품종보호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육종가가 품종을 개발한 후 국립종자관리소에 품종보호를 출원하면 심사를 거쳐 신품종으로 등록해 준다. 등록된 신품종은 지적재산권이 인정돼 20~25년간 배타적인 권리를 누린다.

한국의 경우 2002년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하면서 국제적으로도 품종보호 의무를 지게 됐다. 순차적으로 품종보호 작물을 개방해 2009년까지 국내에서 거래되는 모든 작물로 확대할 예정이다. 현재 155종의 작물이 품종보호 대상이고, 2006년 8월까지 2700여품종이 출원돼 이 중 1600여건이 품종보호 대상으로 등록됐다. 국립종자관리소에 따르면 지금까지 출원된 품종 중 국내종은 65%, 수입종은 35%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런 제도에도 불구하고 신품종의 권리를 둘러싼 분쟁과 불만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03년 농우바이오가 ‘길조무’라는 새로운 무 품종을 개발해 품종보호를 출원하자 신젠타가 자기들이 등록한 ‘태청무’와 품종이 같다며 이의를 제기해 소송으로까지 번진 게 대표적 사례다. 세미니스코리아의 경우 국내에서 판매하는 375개의 품종 중 품종보호 등록을 한 것이 20여개에 불과할 정도로 품종보호 제도를 불신하고 있다.

엄격한 품종보호를 앞세운 지적재산권은 사실 농민에게 충격이다. 아무 생각 없이 기르던 작물에 대해 외국 회사들이 느닷없이 막대한 로열티를 물라고 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매번 사서 뿌려야 하는 채소 씨는 가격에 이미 로열티 개념이 포함돼 있지만 영양증식을 하는 딸기와 장미 등의 작물은 로열티를 따로 계산할 수밖에 없다.

이 로열티 개념은 2001년 품종보호 대상이 된 장미 파동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장미 로열티는 지난 한 해만 70억원이 지급됐고 올해는 120억원이 지급될 예정이라고 한다. 로열티는 보통 연간 총생산원가 추정 금액에 로열티 비율 10%를 곱하지만 장미, 국화 등의 고부가가치 작물은 로열티 비율이 100~120% 수준에 이른다. 2000년 30억원에 불과했던 로열티 지급액은 현재 1000억원 수준으로 급증한 상태다.

로열티와 관련해 당장 시급한 과제는 ‘육보’ ‘장희’ 등 일본산이 재배면적의 거의90%를 차지하고 있는 딸기다. 딸기는 올해 품종보호 대상에 포함될 예정이었지만 일본 종자회사들과의 협상이 난항을 겪으며 품종보호 대상 지정이 2009년으로 미뤄졌다.

일본 측은 딸기 재배면적 300평당 최대 5만원의 로열티를 요구했었다. 사과 재배면적의 70%를 차지하는 일본산 후지사과 등 몇몇 대박 외국 품종의 로열티 지급 기한이 끝났다는 게 그나마 다행일 만큼 앞으로도 우리 농가는 로열티 파고를 넘어야 한다.

국경 없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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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고추의 대명사로 알려진 청양고추는 1983년 중앙종묘가 개발한 품종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국내의 대표적 고추 산지인 경북 청송과 영양의 앞 글자를 딴 청양고추는 신토불이(身土不二) 먹거리의 대표주자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 세계 최대 종자회사인 몬산토의 미국 캘리포니아 옥스나드 채종지.


청양고추는 토종과 외국종이 반반씩 섞인 혼혈이다. 아버지 쪽은 베트남 고추를, 어머니 쪽은 제주 재래종 고추를 계통선발해 우수한 양친(兩親) 종자를 키워냈다. 이로써 내병성(耐病性)이 강한 베트남 고추의 매운 맛과 제주종의 아삭거리는 맛을 모두 갖춘 명품 교잡종(交雜種ㆍ성질이 다른 것끼리 교배해 새롭게 태어난 품종)이 태어날 수 있었다.

현재의 청양고추 종자는 국적 불명의 상품이라 할 수밖에 없다. 토종 종자회사였던 중앙종묘가 IMF 당시인 1998년 멕시코 종자회사인 세미니스(Seminis)에 인수합병됐고, 세미니스는 2005년 1월 미국의 거대 종자회사인 몬산토(Monsanto)에 다시 인수합병됐다. 더욱이 현재 청양고추 종자를 생산, 판매하는 세미니스코리아가 청양고추 종자를 중국 산둥성에서 채종(採種ㆍ씨 만들기)한다는 사실에 이르면 청양고추의 국적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우리 농부들이 우리 땅에 씨를 뿌려 키우긴 하지만 청양고추의 족보에서 토종이라는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사례는 국경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종자 비즈니스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먹을거리의 원천이 되는 종자 산업에서 국적을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돼 가고 있다. 우리 식탁에 올려지는 먹을거리가 외국 종자회사에 점령되고 있다는 뉴스에 신토불이와 국수주의(國粹主義)를 앞세워 흥분할 일만도 아니다. 2025년 세계 인구가 85억명에 이를 경우 식량이 현재보다 50% 더 필요할 것이라는 견해를 감안하면 열악한 재래종으로는 인류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없다. 재래종에 기술과 자본이 투여돼 우수한 종자로 거듭나야 경쟁력이 생긴다. 국경을 넘나드는 거대 자본이 종자 산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세미니스코리아의 조치원 연구소에 있는 인공기상실.


현재 종자 산업은 오랜 육종 기술과 거대 자본을 앞세운 다국적 회사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이들은 미래 종자 산업을 좌우할 유전자 조작(GM) 품종 개발에 전력하는 등 ‘종(種)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세계 종자 업계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대적인 인수 합병 붐에 휩싸이며 거대 다국적 회사들로 급속히 재편돼 왔다.

예컨대 세계 최대 종자회사인 몬산토는 농약회사에서 출발해 인수합병의 붐을 타고 눈덩이처럼 커진 업체다. 몬산토는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데칼브(DeKalb)와 애스그로(Asgrow) 등 곡물 종자 회사들을 왕성하게 인수합병해 나갔고, 2005년 14억달러를 들여 세계 1위의 채소 종자회사인 세미니스를 인수합병했다. 세미니스도 1990년대 후반부터 피토시드(Petoseed) 등 중소 회사들을 인수합병하고 있었다. 당시 세미니스가 인수한 회사의 목록에는 한국 최대 종자회사였던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도 포함돼 있다.

세계적 종자업체들은 지분 구조가 복잡하고 세계적 화학ㆍ제약 회사들이 상당 지분을 갖고 있다. 업계 1위인 몬산토는 미국의 제약회사인 파마시아(pharmacia)가, 2위인 파이오니어(Pioneer)는 거대 화학회사인 듀폰(DuPont)이, 3위인 신젠타(Syngenta)는 스위스의 제약회사인 노바티스(Novartis)가 각각 대주주로 알려져 있다. 거대 화학ㆍ제약업체들이 생명공학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함께 종자 산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몬산토와 파이오니어, 신젠타 등 3대 업체는 현재 210억달러(2005년 기준)에 이르는 세계 종자시장의 31.6%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을 포함한 세계 10대 종자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은 49%에 이른다.<표 참조> 몬산토 한 곳만 해도 전 세계 강낭콩 종자의 31%, 매운 고추 종자의 34%, 오이 종자의 38%, 토마토 종자의 23%, 양파 종자의 25%를 점유하고 있다.

국내 종자시장 역시 이들 거대 업체들에 의해 재편이 끝난 상태다. 1998년 세미니스가 1억6689만달러를 들여 국내 시장 1ㆍ2위 업체인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를 인수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에 앞서 1997년에는 신젠타가 3809만달러의 가격으로 서울종묘를 인수했고, 같은 해 일본 종자회사인 사카다(坂田)가 청원종묘를 1047만달러에 인수했다. IMF를 겪으며 자금난에 시달린 국내 5대 종자회사 중 4개가 외국에 넘어간 것이다. 당시 흥농, 중앙, 서울 등 3대 종자회사의 국내 시장 점유율만도 70%에 이르렀다.

당시 외국 종자회사들이 한국 시장에 눈독을 들인 것은 시장 규모보다는 한국 종자업체들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한국의 종자회사들을 발판으로 아시아 시장을 공략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흥농종묘 출신인 오영석 세미니스코리아 상무는 “흥농종묘의 경우 인수합병 당시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연간 1000만달러의 종자를 수출했다”며 “일본에는 무, 중국에는 배추, 인도에는 고추 종자가 주로 팔렸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육종 수준을 갖춘 일본 종자회사들의 채종지 역할을 하던 한국은 일본의 기술과 종자를 바탕으로 무, 배추 부문에서는 상당한 경쟁력을 쌓았다. 1970년대부터 일본산에 버금가는 맛의 무, 배추 종자가 나오면서 일본에 역수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또 서양의 싼 종자들이 판을 치면서 재래종 채소의 특성이 사라진 중국에서도 맛있는 한국산 채소 종자들은 경쟁력이 있었다고 한다. 재래종 고추만 판치던 인도 시장은 생산 단가를 낮추고 수확량을 높인 한국산 고추 종자가 거의 석권하는 수준이었다.

결국 세계 시장에서 통하던 한국산 종자의 소유권은 IMF를 거치며 모두 외국 회사에 넘어갔다. 당시 한국 종자 회사들이 갖고 있던 우수 종자 중에는 아직까지 효자 노릇을 하는 대박 상품도 많다. 1984년 흥농종묘가 개발한 ‘금싸라기 참외’가 대표적이다.

러시아 야생종 참외와 일본산 은천(銀泉) 참외, 멜론 등이 교배된 금싸라기 참외는 개발에만 17년이 걸린 품종으로, 국내 참외 종자 시장을 석권하며 20여년간 매년 평균 2억원의 판매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종자 가격이 보통 농가 조수익(순수익에 총비용을 더한 개념)의 2%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금싸라기 참외 종자가 일으킨 부가가치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세미니스코리아 측은 금싸라기 참외와 청양고추, ‘세계 최고의 당도’를 자랑하는 삼복꿀수박(1994년 개발)을 흥농종묘에서 넘어온 3대 대박 종자로 꼽고 있다. 현재 세미니스코리아는 고추, 배추, 무, 오이, 수박 등의 작물을 중심으로 375개의 종자를 판매하고 있는데 2003년부터 본사의 기준과 기술력을 도입해 새롭게 개발한 60여개의 종자를 제외한 나머지가 흥농종묘가 개발한 것이다.    국내 종자시장도 다국적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50%가 넘는다. 우리의 경우 주요 곡물 종자는 국가가 관리해 민간 진입이 어렵기 때문에 채소 종자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는데 연간 시장 규모가 1250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 중 세미니스코리아가 28%의 점유율로 1위를 기록하고 있고, 2001년 국내에 진출한 일본회사 다키이, 스위스 노바티스가 소유한 신젠타가 각각 10%, 사카다가 7% 정도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가장 늦게 국내에 진출한 다키이는 국내 육종의 개척자인 우장춘 박사가 1대 농장장을 지낸 업체이다. 이들 외국 회사의 점유율을 합하면 50%가 넘는다.

▲ 세미니스코리아에서 길러낸 종자들이 검사·포장 작업을 거치고 있다.

작물별로도 우리의 대표적인 먹을거리인 무, 배추, 고추 종자의 50%를 다국적 기업이 공급한다. 특히 양파, 당근, 토마토는 일본산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 중 세미니스코리아와 신젠타 등은 한국에서도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 있지만, 일본 기업들이 국내에서 판매하는 종자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개발된 것이다. 별도의 판매회사를 국내에 두고 있는 다키이는 국내 판매 종자 전체가 일본에서 개발돼 채종까지 마친 순수 일본산이고, 청원종묘를 인수한 사카다는 배추와 고추만 국내에서 개발하고 나머지는 일본산 종자를 수입해 판다. 현재 채소 종자에는 관세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국내 5대 종자회사 중 유일한 토종 회사인 농우바이오는 시장 점유율 2위(19%)를 기록하고 있지만 거대 다국적회사의 틈바구니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농우바이오는 다국적 회사에 비해 판매망은 강세이지만 R&D 분야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열세다. 농우바이오의 경우 한 해 매출액의 20% 정도인 60여억원을 R&D에 투자하지만 몬산토는 이 액수의 80배인 5000억원을 쏟아붓고 있다.

더욱이 한국종묘협회에 등록된 50여개 업체 중 종자 개발 능력을 갖춘 토종업체는 농우바이오를 포함해 3곳 정도, 자체 연구소를 가진 회사는 10개도 되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다국적 회사의 임원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씨만 갖고 나오면 10여년이 걸려 수억원을 투자한 신품종을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 있다”며 “우리 입장에서는 ‘씨 도둑’을 막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국적 기업이 벌이는 종자 전쟁에서 이제 국경은 아무 의미가 없다. 국경을 넘나들며 새로운 종자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 산(産)이라는 개념은 적용하기 힘들다. 심지어 세계 굴지의 종자회사들은 세계 각지의 기후와 풍토를 한곳에 구현해낼 수 있는 첨단 실험실을 갖추고 있다. 몬산토의 경우 미국 미주리주 체스터필드의 본사에 무려 122개의 종자 실험실이 있다.

실험실마다 온도, 습도 등이 다 다르다. 이곳에서 특정 지역의 기후와 풍토에 맞게 탄생한 신품종은 세계 100곳의 실험 농장에 보내져 실제 재배 가능성이 테스트된다. 2위 업체인 파이오니어도 미국 일리노이주 드모인 본사에서 개발한 종자를 35개국 100여개 농장에서 테스트한다.

오영석 세미니스코리아 상무는 “우리의 경우 흥농종묘의 우수한 육종 인력들을 활용해 한국에서 육종은 하지만 신품종의 채종은 비밀 유지 등의 이유로 외국에서 한다는 게 회사 방침”이라며 “중국, 베트남에서부터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에 채종지가 있다”고 말했다. 산둥성에서 채종되는 청양고추처럼, 국내에서 신품종이 개발되면 씨를 외국으로 갖고 나가 다량 생산한 후 이를 다시 국내에 수입해 판매한다는 것이다. 긴 장마와 농가 인력난 때문에 한국은 채종지로서 매력을 잃고 있다는 것이 종자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다국적 종자회사들이 종자 전쟁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는 유전자 조작(GM) 품종이다. 1994년 ‘껍질이 무르지 않는 토마토’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하며 상업화의 길을 연 GM 농작물은 인체에 해가 있으냐 없느냐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농산물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단백질을 강화한 콩’ ‘○○병에 강한 옥수수’처럼 특정 기능을 강화한 유전자 조작 농작물은 농사의 최대 적인 병이나 해충에 강하고 생육 기간이 짧아 상업성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2000년만 해도 세계 종자시장에서 유전자 조작 품종이 차지하는 비율은 7분의 1 수준에 불과했지만 2010년에 이르면 300억달러에 이르는 종자시장의 3분의 2를 점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 작물별로도 현재 콩은 세계 재배 면적(9100만정보)의 60%가 유전자 조작 품목이며 옥수수 14%, 면화 28%, 유채 18%를 유전자 조작 품종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1996년에 비해 유전자 조작 품종 재배가 55%나 늘었다.(2005년 기준)

현재 다국적 종자회사들이 유전자 조작 품종을 개발하는 당장의 목표는 내(耐) 제초제성 강화에 있다. 우수한 제초제를 개발하고, 이 제초제에 강한 종자를 만듦으로써 농약과 종자를 모두 팔겠다는 전략이다. 전체 매출액 중 종자와 농약 비율이 8 대 2 정도인 몬산토는 자사 제초제에만 저항성을 갖는 유전자 조작 콩을 개발해 독점 판매하고 있다. 현재 재배되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71%가 내 제초제성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다국적 종자 회사는 아시아의 주식인 벼에 대해서도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2000년 4월 몬산토가 벼의 유전체(게놈) 지도 초안을 발표한 후 다채로운 종자 개량이 이뤄지고 있다. 비타민 A 성분을 강화한 ‘골든 라이스’나 번식 능력이 없어 채소처럼 매번 씨를 구입해 뿌려야 하지만 수확량은 보통 벼의 2배에 이르는 ‘하이브리드 벼’ 등이 대표적이다. 다국적 종자 회사들은 차세대 연료인 바이오디젤과 에탄올을 효과적으로 뽑아내기 위한 옥수수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외국자본의 국내 종자시장 진출 연혁

1997년 신젠타가 서울종묘 인수(3809만달러)
1997년 사카다가 청원종묘 인수(1047만달러)
1998년 세미니스가 흥농종묘·중앙종묘 인수(1억6689만달러)
2001년 다키이 창업(3800만달러)     

                                                                                                             증식용이나 재배용으로 쓰이는 씨앗이나 영양체

종자(種子)는 대표적으로 씨(seed)를 뜻한다. 대부분의 곡물과 채소가 씨로 번식을 한다. 종자는 꽃이 필 때 수술의 꽃가루와 암술의 씨핵이 결합해서 생긴다. 이 때문에 종자번식을 유성번식, 양성번식이라고 부른다.

시판되는 채소 종자는 대부분 1대 교잡종(F1)이다. 아버지 종과 어머니 종을 교배해 전혀 다른 성질의 종을 만들어낸 것으로, 유전적 특징이 1대에 그친다. 1대 교잡종끼리 교배해 얻은 씨를 뿌리면 유전적 특징이 고르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우수한 아버지 종과 어머니 종을 교배해 매번 F1을 생산해내야 한다. 농부들이 특정 품종의 채소 씨를 매번 사서 뿌려야 하는 이유다.

반면 곡물의 종자는 고정종의 특징을 지닌다. 한번 품종이 개발되면 여러 대에 걸쳐 유전적 특징이 이어져 내려간다. 특정 품종의 볍씨를 뿌리면 언제고 그 품종이 자라는 식이다. 채소 종자 중에서는 상추가 예외적으로 고정종이다.

1998년부터 시행된 우리의 종자산업법은 종자의 정의에 대해 ‘증식용 또는 재배용으로 쓰이는 씨앗·버섯종균 또는 영양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곡물과 채소의 씨앗뿐 아니라 버섯이나 영양번식을 하는 감자 등도 종자에 포함되는 것이다. 영양번식은 식물의 줄기, 잎, 눈(芽), 뿌리 등의 영양기관을 이용해 번식하는 것으로, 무성번식에 해당한다. 묘목으로 거래되는 딸기, 장미 등의 과수와 화훼가 대표적인 무성번식 작물이다.

김진덕

출처 : '도시농부 투제이' 의 블로그
글쓴이 : 투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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