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①·간이역 |
실어 나를 게 없다면 기차는 서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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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서지 않는 미룡역, 그리고 소룡2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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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라는 세 음절의 단어 없이 지금의 우리를 설명할 수 있을까. 오랜 ‘미몽(迷夢)의 시대(時代)’가 지나고 사람들은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이 힘들수록 어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로 남을 뿐이다. 시간은 자신의 속도만큼 인간을 지배한다. 광속에 도전하는 ‘디지털(digital)의 시대’는 소통의 밀도를 떨어뜨려 사람의 사이, 즉 인간(人間)을 분리시킨다는 점에서 또 다른 미몽의 시대다. 이리하여 꿈은 분절되고 결박되어, 잊혀진다. 우리의 의식과 기억이 시간의 맥락을 포착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폴 고갱의 그림에서). <편집자주>
달리는 기차는 야누스다. 1899년 노량진과 제물포 구간에서 기차가 운행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이 '괴물'을 목격하고는 전율에 떨었다. 대체 저 물건은 무엇을 실어 나르는 데 쓰이는 것인가. 불길한 예감은 과연 적중했다. 기차는 쌀과 석탄과 나무와 그리고 예비 노동자와 병사를 태우고 항구로 달렸다. 매캐한 연기를 뒤로 한 채. 기차라는 이름의 근대화는 이렇게 세상을 창조했다.
기차가 달린다. 기차를 따라 아이들도 달리지만, 아이들은 결코 기차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것은 동경(憧憬)의 이미지다. 기차는 종착역을 상징함으로써 자신을 관철시킨다. 달리는 기차는 대처(大處)로 향하는 통로였다.
2006년 8월 26일 06시 47분, 무궁화 1422호 기차가 부산역을 출발했다. 이 기차는 5시간 뒤인 11시 53분 경상북도의 내륙 영주에 도착한다. 부산에서 김천까지는 경부선, 김천에서 영주까지는 경북선. 하루 왕복 3회, 객실 다섯 량으로 운행하는 이 기차의 좌석정원은 360명이다. 평일에는 100명, 주말에는 200명이 이용하는데, 경북선이 시작하는 김천역에서 승차한 승객은 지난 7월 한달 평균 1일 24명이었다.
승객들은 대부분 눈을 감고 있다. 눈을 뜨고 있는 승객들 역시 말이 없다. 신발을 벗고 천연덕스럽게 책상다리를 하고 의자 위에 걸터앉은 할머니의 입으로 꾸역꾸역 들어가는 카스테라의 부자연스러운 단내. 기차가 곡선주로에 들어설 때마다 객실을 침범하는 화장실의 지린내. 어쩌면 이 냄새들이야말로 이 기차가 아직 쓸모 있다는 것을 시위하는 유일한 증거다.
“지선(경북선) 타는 사람들은 본선 타는 사람들보다 순합니다. 아무래도 가끔 타니까요.” 박정표 승무원의 말이다. 가끔 탄다고는 하지만, 지선을 타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경북선, 정선선, 영동선 인근의 지역주민, 철도이용객,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역 근무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0대 이상(53.4%)의 1차산업 종사자(33.0%)가 업무통행(29.6%)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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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룡2리를 관통하는 기찻길 옆의 오막살이 한 채, 미룡역이 폐역 처리된 뒤, 오막살이에 혼자 사는 할머니는 사람이 그립다. <정기훈/매일노동뉴스> | | 열차는 3번 국도와 나란히 달리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한다. 철길과 도로가 평행선을 그리는 모습은 정겹다. 그러나 서로의 처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3번 국도 김천-어모 구간(13.5km)은 지금 4차선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이 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경북선 구간에는 원래 아천역과 두원역이 있었다. 그러나 아천역은 1977년부터 여객 운행을 중지한 뒤 보선소로 쓰이고 있고, 두원역은 2006년 폐역이 됐다. 경북선의 23개 역 가운데 11개 역이 폐역, 3개 역은 역원 무배치 간이역이다.
도로는 늘어나고 역은 없어진다. 좁은 나라에 ‘마이카’가 득시글하기 때문이다. 기차는 서기로 약속된 곳에만 서지만, 자동차는 그것이 ‘내 것’이라면 아무 곳에나 설 수 있다.
1991년부터 2003년까지 교통부문 총투자액 138조7천억원 가운데 철도는 34조원으로 24.5%였다. 도로는 83조원으로 60%를 차지했다.
아반테, 카니발, 누비라…. 3번 국도를 달리는 이 ‘튀는’ 이름의 자동차들은 경북선의 무궁화호 기차보다 훨씬 빠르다. 기차는 경부선 구간이 아닌 노선에서는 90km 이상으로 달릴 수 없다. 1996년까지 일반 철도 투자액은 해마다 2천억원원 안팎. 일제시대 건설한 철도를 최소한 개보수 하는 수준이다. 경북선 전체 115.2km 가운데 곡선구간이 12.5km.
경제를 생각한다면 탈 수 없는 이동수단인데, 경북선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적응이 된 것인가, 체념을 한 것인가. 실은, 속도가 수입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선(支線) 타는 사람은 정해져 있어요"
객차 정면에 붙여 놓은 KTX 광고판이 승객들을 내려 보고 있다. “시속 300km 쾌감 자극, 바람을 가르는 초특급 고속열차와 만나다!” 그러나 어쩐 일인가. 때깔이 눅어 후줄근하기 짝이 없는 광고판. 최첨단 KTX도 경북선과 만나면 별 수가 없다. 이리하여, 도로에 밀리던 철도는 능력 있는 개인에게 눈을 돌렸다.
그러나 ‘시간이 돈’인 사람들에게 속도를 팔기 위해 KTX는 속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국민의 재산까지 털어 넣었다. 고속철도는 개통 전에 이미 4조5천억원의 빚을 졌다. 이 빚을 갚고 철도공사가 ‘정상화’ 되려면 비싼 고속철도를 더 많이 운행하는 수밖에 없다.
전국의 635개 철도역 가운데 절반 이상인 335개 역이 적자역이다. 그러니 경북선처럼 낡고, 느리고, 값싼 일반 철도는 버림받게 되어 있다. 속도에 복무하게 될 때 수학은 냉혹해진다. 건설교통부와 철도공사의 적자역 정비 방침에 따라 경북선의 역들 가운데 용궁, 어등, 함창 등 3개 역이 2004년에 무인화 간이역이 됐고, 2006년에는 두원, 양정 등 2개 역이 폐역이 됐다.
참여정부는 국토균형발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에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를 건설할 예정이다. 농촌에는 ‘신활력사업’이라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나라의 지도가 바뀌는 셈인데, 그림은 2012년이나 돼야 사람들 눈에 보이겠고, 먼저 움직인 것은 땅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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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훈/매일노동뉴스> | | 경북선의 기착지인 상주시와 김천시는 혁신도시 선정을 놓고 격돌을 벌였다. 한창 오를 때 상주시의 땅값은 두배까지 올랐지만, 혁신도시로 김천시가 선정되자 용을 꿈꿨던 지렁이는 이무기도 못 되고 땅에 떨어졌다.
상주는 울고 김천은 웃었다. KTX 김천역사 건립예정지인 농소면과 남면 일대 170만평에 혁신도시가 건설될 예정이다. 혁신도시로 뜬 김천. 그러나 걱정이 없는 게 아니다. KTX가 정차하게 될 인근의 구미시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구미가 김천보다 교육환경이 좋다는 게 이유다. 교통 발달로 오히려 사람들이 구미로 몰리지 않을까 하는 게 김천의 고민거리다. 그럼 상주는? 그리고 상주의 배후지인 함창은? 말이 지방분권이고 개발이지, 이건 숫제 사람 집어 삼키는 불가사리나 다름없다는 게 이 지역 서민들의 볼 멘 목소리다.
그리스신화의 에리직톤은 먹을수록 허기를 더 느낀다. 개발도 그렇다. 산과 들과 강과 바다를 계속 먹어치운다. 먹으면 토해낼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거늘, 웬걸 이 놈의 식욕은 줄기는커녕 종당에는 하늘을 찌른다. 개발은 편리와 안락을 인간에게 선사하지만, 자신의 종착역이 어디인지는 끝내 함구한다.
상주역에서 그나마 있던 승객들이 쑥 빠져 나가자 열차는 텅 비었다. 영주가 가까워질수록 타는 사람은 없고 내리는 사람들뿐이다. 차창 밖은 여전하다. 포도밭, 마을의 지붕들. 모두 수평선이다. 오래된 풍경화. 수직선은 볼 수 없다. 이곳은 이미 탈락한 지 오래다.
장이 섰다. 1951년 개설돼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성황을 이루었고, 특히 명주와 소는 전국적으로 거래가 됐다는 함창 장이다. 1,000평 규모의 장터에 문을 연 상점은 20여 곳. 그나마 붐비는 곳이 종묘상인데, 촌로 10여명이 부채질을 하고 있다.
밭에서 직접 키웠다는 농작물을 앞에 두고 웅숭그린 채 앉아 있던 할머니들이 낯선 얼굴을 보자 일제히 외친다. “2시 차 타고 집에 가구로 떨이해 주소~” 함창읍에서 버스로 30분 들어가면 있다는 하갈리에서 감자가루, 상치, 호박잎을 들고 나온 정복련(80) 할머니의 장날 하루벌이는 2만원.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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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훈/매일노동뉴스> | | 도로가 생기면서부터다. 함창 장을 북적이게 했던 우시장은 상인들이 트럭을 장만하게 되면서 죽었다. 상인들은 트럭을 몰고 마을로 소를 사러갔다. 3번 국도 상주-문경 구간의 포장공사가 완공된 게 1979년. 그로부터 6년 뒤인 1985년 우시장은 문을 닫았다. 명주를 생산하는 농가는 교촌리에 50여 가구가 남아 있지만 생산협동조합을 만들어 도매상을 통하거나 인터넷으로 도시와 거래하고 있다.
명주와 소가 사라진 뒤 ‘성장엔진’을 찾지 못하던 함창 사람들은 도로를 따라 떠났다. 이웃 점촌(문경시 점촌동)의 탄광노동자들이 떠나자 함창은 더 쓸쓸해졌다. “여기는 노는 사람이 참 많아요. 뭐 먹고 사는지 모르겠어요.” 7년 전, 수원에서 함창으로 왔다는 만두가게 아주머니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소읍들은 어디를 가나 이런 비밀을 안고 있다.
함창읍의 인구는 1981년 20,717명에서 2005년 7,798명으로 줄었다. 1980년대만 해도 12명의 역무원이 근무했다는 함창역은 2004년 역원 무배치 간이역으로 떨어졌다. 장날이면 기차와 역은 장꾼들의 차지였다는데, 오늘 역전 마당의 주인은 한여름 불볕이다.
철도공사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함창역의 2004년 승차인원은 17,534명, 강차인원은 15,880명, 여객수입은 1억1천744만원이다. 역원 무배치 간이역의 평균 운용비용은 8억1천8백만원. 역원 배치 간이역의 평균비용은 12억4천7백만원.
정부는 철도공사에 공익서비스보상(PSO)을 하고 있다. 2005년 철도공사는 5,300억원을 요구해 3,000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철도공사는, 정부의 PSO 지원이 운영비의 1/3도 되지 않고 정부 예산편성방침에 따라 지원액도 들쭉날쭉 하다며 불만이 많다. 그러니 철도공사로서도 우선 손대기 쉬운 게 이들 내륙의 작은 역들이다.
정부와 철도공사의 신경전은 고속철도 운영부채 처리 문제에 이르러 정점에 달한다. 고속철도 1단계 사업비용이 15조원. 이 가운데 2005년 1월 출범한 철도공사가 인수한 운영부채는 4조5천4백47억원이고, 철도시설공단이 5조8천9백10억원을 인수했다. 철도시설공단이 인수한 부채 역시 선로사용료로 철도공사가 부담해야 되므로 사실상 10조원 이상의 부채를 안고 있다는 게 철도공사의 주장이다. 그래서 철도공사는 2010년 흑자로 돌아서기 위해서는 고속철도 건설부채 4조5천억을 정부가 인수하고, 시설사용료 5,150억원을 면제해주든지 아니면 향후 10년간 유예하고 PSO 보상을 현실화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정부도 내심 어느 정도는 들어줘야 한다는 눈치다.
그런데 철도공사 말대로 정부가 운영부채를 해결해서 운영이 정상화되면, 그 혜택은 누가 누리게 되는 것일까. 고속철도 운행은 확대되고 일반 철도 운행은 줄어들었다. 이는 국민들이 일반 철도를 탈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것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4조5천억원을 철도 이용객 1억1천1백만명(2004년 기준)으로 나누면 1인당 대략 4만원꼴. 그렇다면 시속 300km로 달리는 KTX를 44,800원을 지불하고 타는 승객과 평균시속 60km로 달리는 경북선을 6,500원을 지불하고 타는 승객은 이미 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 게 아니다. KTX는 지불능력이 있는 이들에게는 비행기의 대체재였는지는 모르나, 지불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멀쩡히 있던 ‘동네 기차’에 지갑까지 털어가는 귀신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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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훈/매일노동뉴스> | | 함창역은 자신의 운명과 관련된 이 복잡한 퍼즐을 알려고도, 풀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늦은 오후 자신의 그림자를 천연덕스럽게 늘어뜨린 채 오지 않는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합창읍의 가구 수는 3,085호이고, 등록된 자동차 수는 2,305대이다. 함창역 아랫길에 주유소가 생긴 게 1988년이다. 합창읍의 정신적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도진호(61) 문화당서점 사장은 “함창은 버스도 줄어들고 있다”면서, 읍의 쇠락을 진정으로 걱정했다. 실제 그랬다. 2년 전만 하더라도 대구행 버스가 하루 21회 출발했는데, 18회로 줄었다. 부산과 충주로 가던 버스는 아예 없어졌다.
2004년 개통된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영향이다. 함창읍보다 큰 상주와 점촌에는 서울행 충주행 대구행 등 무정차 버스가 오히려 늘었다. 그러나 이들 버스는 함창읍에 서지 않는다. 함창 사람들이 대도시에 ‘빨리’ 가려면 상주나 점촌으로 나가야 한다. 돈도 더 들고, 품도 더 들게 됐다.
문화당서점에서 만난 함창읍의 식자들은 함창이 상주와 점촌에 끼여 점이 되어 사라질 것이라며 염려했다. 신활력사업으로 상주는 곶감 명품화, 문경은 오미자 클러스트 구축으로 선정돼 연간 20억원씩 3년 동안 60억원을 지원받는다. 합창은 상주시의 읍이고, 점촌과는 5분 거리지만, 이 신활력사업의 활기는 함창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일부 농가들이 돈은 좀 벌겠지만…. 우리하고 상관이 있나?”
장이 파하고 해가 완전히 떨어지자 읍내 청소년들이 슬슬 거리로 나왔다. PC방에서 나오는 남자 고등학생들 3명은 이웃 점촌으로 놀러 간단다. 노래방에 갈 계획이다. 읍내 노래방에서 선생님이나 아버지를 만나면 머쓱하다. 어른들도 심심한 이 읍내 생활을 청소년들은 어떻게 견딜까. 함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대학교로 진학했다는 한 청년이 답을 해 주었다. “대학 갈 때까지만 해도 이 곳이 답답한 곳인 줄 몰랐어요.”
기차가 뗏장을 막 입힌 무덤 같은 폐역을 순식간에 스쳐갔다. 김천 기점 104.7km 지점에 있는 경북선의 미룡역. 2001년 6월 22일 이후로 열차가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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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훈/매일노동뉴스> | | 폐역이 된 미룡역은 지금은 마을의 흉물이지만 주민들이 국회의원 ‘빽’까지 동원해 만든 귀한 역이다. 역이 없을 때, 영주시 장수면 소룡2리 주민들은 외부로 나가려면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는 4.5km, 불법이지만 기찻길 따라 3km를 걸어 어등역으로 나가야 했다.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지만 주민들은 기찻길이 마을 바로 앞을 지나는지라 욕심을 좀 부렸다. 영주 출신 4선(6,7,8,10대) 국회의원으로 교통부장관까지 지낸 김창근 의원(작고)에게 “우리 마을에도 역을 만들어 달라”고 ‘압력’을 넣었다.
이리하여 1971년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철로의 직선구간인 논(!)과 숲(!) 사이에 승강장이 만들어졌다. 역이 설 만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승강장이면 어떤가. 어엿한 철도청의 역원 배치 간이역으로 미룡역이라는 문패까지 어엿하게 달게 됐는데.
김천과 영주를 운행하는 비둘기호가 하루 2번, 점촌과 영주를 다니는 통근열차가 하루 2번 정차했다. 특히 2량짜리 통근열차는 도시의 만원버스마냥 학생들을 꽉꽉 채워 다녔고 어떤 날은 기관차나 화차 위에 태우기도 했다.
논밭에서 흩어져 일하던 주민들은 기차가 역에 들어오는 소리를 신호로 같이 모여 앉아 새참을 먹고, 기적 소리에 맞춰 새마을 구판장에서 주민회의도 열었다.
1982년 28번 국도 문경-영주 구간이 포장되면서 3km를 걸어 나가면 버스를 탈 수 있게 됐다. 3km 걸어야 한다는 이유로 역을 유치했던 주민들이지만 운행횟수가 많다는 점에서 버스는 더 매력적이었다. 3km 떨어져 있던 버스정거장과 힘겨운 싸움을 하던 미룡역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1984년 승차권대매소영업이 중지됐다.
1998년이 되자, 버스가 마을 앞까지 들어 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는데, 바로 이 해 점촌-영주 간 비둘기호 통근열차 운행이 중지됐다. “버스도 오고 집집마다 차도 있어서….” 마을 사람들은 역을 잊었다. 그런데 이 마을의 자동차는 트럭까지 합쳐 모두 일곱 대다. 무엇이 이들에게 “집집마다 차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20년 전 역 앞에서 담배가게나 해서 먹고 살 요량으로 거저 주어도 살지 않을 철로변 오막살이를 덜컥 사서는 영주에서 이곳으로 온 김춘자(71) 할머니는 “기차를 끊은 거는 발목을 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언성을 높이지만, 부칠 논밭이 없는 김 할머니는 마을에서 소수파다.
역이 사라지는 동안 마을에 새로이 등장한 것은 도로와 차만이 아니었다. 노인정과 보건진료소가 생겼다. 역 대신 보건진료소가 생겨 다들 좋아했지만, 80호가 살던 소룡2리 마을에 지금은 54호가 산다. 주민 수는 117명으로 60대 이상이 111명이다. 이 마을에서는 1988년 이후 아기가 태어나지 않았다.
노인들이 운명을 다하면 이 마을은 어떻게 될까. 마을 주민들은 미룡역을 보며 자신들의 운명을 예감한다. 기차는 섰지만, 사람들은 어디든 나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가지 않는다. 갖고 나갈 것도, 나가서 가져올 것도 없기 때문이다.
기차는 서기 위해 달린다. 서지 않으면 기차가 아니다. 폭주기관차를 말하는 게 아니다. 나한테 서지 않고 달리는 기차, 그것은 '버림'의 요령(妖靈)이다.
서지 않는 기차. 그것은 근대화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소리 없는 기적 소리다. 기차가 서지 않는 마을. 그것은 새로운 세계가 더 이상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망 선고다.
기차가 개통된 지 일백년하고도 7년. 기차는 이 마을을 원치 않은 세상으로 불러내고는, 세상에 익숙해질 만하게 되자 돌려보냈다. 더 이상 실어 나를 게 없다면 기차는 서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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